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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ports] ‘늦깎이 씨름왕’ 손명호, 장인 정신으로 백두장사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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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8 21:18:32 수정 : 2017-06-08 21: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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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격언 중에 ‘마지막까지 남는 자가 가장 강하다’는 말이 있다. 속뜻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세를 낮춰 적응해 살아남거나, 남들이 뭐라 하건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고수하면 빛을 본다는 의미다. 물론 후자가 훨씬 버겁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외길을 걷기 때문에 굳건한 신념이 없다면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이들을 ‘장인(匠人)’이라 부른다.

최근 한국 씨름판은 불굴의 장인 정신이 없다면 버티지 못할 지경이 됐다. 지난해 7월 마지막 프로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의 코끼리씨름단이 해체하면서 자치단체 소속 실업팀들만 명맥을 잇는 형편이다. 과거 1980년대 씨름은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팀만 8개에 달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만기, 강호동 등 화려한 쇼맨십과 실력을 갖춘 선수들은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샅바를 밀고 당기는 정직한 승부는 자극적인 격투기물이 득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다.

이처럼 차갑게 식은 모래판이지만 오늘도 묵묵히 샅바를 고쳐 매는 선수들이 있다. 근래에 뭉클한 감동을 안겨 준 선수가 ‘늦깎이 씨름왕’ 손명호(34·의성군청·사진)다. 손명호는 지난 2일 충북 보은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단오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145㎏이하) 결정전에서 장성우(용인대)를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추석장사씨름대회서 실업팀 입단 8년 만에 첫 백두장사에 등극하더니 벌써 두 번째 장사 타이틀을 추가했다.

경북 의성중학교 육상부 출신인 손명호는 또래에 비해 유독 덩치가 컸다. 이를 눈여겨본 담당교사의 추천으로 씨름에 입문했다. 그때까지 씨름을 브라운관에서만 봤던 손명호는 기술도 맷집도 없었다. 체격에 비해 뛰어난 운동신경만이 유일한 밑천이었다. 하지만 손명호는 어려운 살림에도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부모님에게 보답하고자 이를 악물었고 대구대 재학 시절인 2007년 대학장사씨름 6차대회 무제한급에서 우승하며 결실을 봤다.

그러나 2년 뒤 “내 아들이 미래의 천하장사”라고 자랑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손명호는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실업 무대에서 한 번도 장사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대학 졸업 후 모래판을 지배할 기대주로 주목받던 손명호는 2012년 천하장사대회를 시작으로 2015년 설날장사대회까지 5차례 결승에 올라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선수 생활이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꽃가마를 타야 했다.

마침내 지난해에야 만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백두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손명호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무관의 세월이 길었고 비인기 종목이라 포기하고 싶었던 유혹을 뿌리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응원해 준 덕에 우승했다”고 담백하게 말했지만 어떤 말보다 가슴에 와 닿는 소감이었다.

이같이 모래판 위에서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어 민속 씨름은 아직까지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살과 살이 부딪치는 날 것 그대로의 승부와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씨름에 따뜻한 관심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안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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