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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공익제보] 익명으로는 제보 불가능…구조금 '쥐꼬리'

입력 : 2017-06-13 20:48:54 수정 : 2017-06-14 14: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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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노출 비일비재·보복 무방비… 시스템 전면 손질해야
공익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공익제보자(공익신고자) 보호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기업이나 기관들의 보복이나 압박 방법이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명무실한 공익신고자 보호제도

우리나라는 2008년 공공부문의 부패행위를 규제하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을, 2011년 민간부문의 공익침해행위를 규제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외형적으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갖췄다. 이에 따라 공익제보자는 신고로 불이익을 받을 때 국민권익위원회에 신분보호, 신변보호, 불이익 금지 등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권익위 자료를 보면 신청 건수가 1년에 10건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가운데 받아들여진 신청은 더욱 적었다. 권익위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권익위에 접수된 공익신고자의 신분보호 요청은 49건에 불과했다. 권익위는 이 가운데 17건(34.7%)에 대해서만 인용(또는 화해)했다.

같은 기간 동안 폭력이나 테러 등으로부터의 신변보호 요청은 9건에 인용 6건, 소속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이 예상될 때 예방조치를 구하는 불이익 조치 금지 신청은 7건에 인용 1건에 그쳤다. 공익신고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을 때 이에 대한 책임감면을 신청한 것은 고작 6건이었고 2건만 인용됐다.

반면 권익위의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에 반발해 기업이나 기관이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은 모두 18건이었다. 이 가운데 권익위가 패소한 것은 1건뿐이고, 나머지는 권익위가 승소(6건)하거나 원고의 소 취하(4건), 또는 진행 중(7건)이어서 이 제도가 주로 제보자를 압박하기 위한 기업이나 기관의 ‘시간끌기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적용이 제한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공익제보자도 많다.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는 ‘국민의 건강·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건축법’, ‘공중위생관리법’, ‘아동복지법’, ‘의료법’, ‘환경보건법’ 등 279개의 대상 법률을 위반한 경우로만 한정돼 있다. 배임, 횡령, 직권남용 등 형법 위반에 해당되는 기업의 부패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제보를 할 경우 공익제보자로서 보호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공익제보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분노출 등 인권침해나 보복 속수무책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신고한 공익제보자 중에서 끝까지 익명으로 남은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공익제보자가 소속기관에 신고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감독기관이나 권익위 등에 신고하더라도 해당기관으로 이첩하는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공익제보자의 보호에 무심하다는 얘기다. 서울시의 한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의 비리를 신고하자마자 학교에서 내가 공익제보자라는 사실을 알더라”며 “익명으로 교육청 제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익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되면 소속 기업이나 기관은 공익제보자에게 징계 등의 직접적 불이익뿐 아니라 따돌림, 한직으로의 전보 등 간접적이고 은근한 불이익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공익제보자를 압박 또는 보복한다.

이 같은 허술한 공익제보 체계는 공익제보자의 정신적 고통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는 제보 이후 조직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괴로움을 겪고, 해고돼 소송 등으로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 가족과의 불화와 갈등이 생긴다. 호루라기재단은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 조사보고서’(2013년)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공익제보자의 인권침해를 방지할 방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각종 보복과 압박에 시달리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공익제보자를 위한 마땅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나 대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권익위에서 공익신고자의 정신적 고통과 관련한 진료비를 지급한 사례가 있지만, 치료 전 단계의 상담제도 마련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도 턱없이 부족

많은 공익제보자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고통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공익제보 이후 해고될 경우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익신고 장려 차원에서 지급하는 공익신고 보상금과 포상금의 경우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받기가 쉽지 않다. 보상금은 공익신고로 정부 수입이 늘거나 비용을 절감할 경우 해당 금액의 일정 비율로 받을 수 있고, 포상금은 공익에 기여한 사실이 명확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

또 공익신고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지원되는 구조금은 공익제보자의 생활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권익위에 따르면 구조금은 2011년부터 올해 4월까지 겨우 4명에게 102만4800원이 지급됐을 뿐이다. 한 사람당 26만원꼴로,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 금액이다.

오히려 민간에서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공익제보자들의 생활비 지원사업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호루라기재단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익제보자에게 매년 2000만원 이내의 생활지원금을 주고 있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난해 실직한 공익제보자 15명에게 총 1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공익제보자들의 생계 지원에 정부는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으로 최소한의 보호만 보장하고 있어 공익신고자에게 도움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는 “공익신고를 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있는 신분을 공익신고 이후 보장해주겠다는 것은 공익신고자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며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신분보장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보상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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