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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00년의 물살 이겨내고도… 담담하게 뿌리내린 겸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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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6 10:00:00 수정 : 2017-06-15 15: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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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농다리·초롱길 폭이 좁아 앞사람을 따라 한 줄로 가야만 한다. 길지 않으니 무리하게 앞서갈 필요도 없다. 돌조각들로 울퉁불퉁해 한 번씩은 고개를 숙여 잘 가고 있는지 살피며 건너야 한다. 이 돌다리를 건너는 주민, 여행객들의 모습이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이런 모습은 10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묵묵히 흐르는 물줄기와 그 위에 놓인 돌다리의 형상은 변한 것이 없다. 1000번째 여름을 맞는 이 돌다리는 이번 장마에도 굳건히 제 모습을 지킬 것이다.

고려시대 초반 정도로 추정된다. 충북 진천 굴치 마을(현 굴티 마을)에 사는 임씨 성의 장군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세금천을 건너려는 젊은 아낙을 만났다. 그 여인은 아버지가 죽어 친정 가는 길에 세금천을 만나 건너지 못했다. 여인의 효심에 감복한 임 장군이 돌을 날라 다리를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충북 진천의 농다리는 겉보기엔 듬성듬성 쌓은 돌무더기가 부실해 보이지만, 천년 세월을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킨 다리다. 자연 순응의 지혜와 과학적인 기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천년 세월을 버텼다.
농다리 옆에 놓인 돌 징검다리.
충북 진천의 농다리는 축조 시기만 대략 알려졌을 뿐 누가 조성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1930년대 발간된 ‘조선환여승람’과 ‘상산지’에 ‘고려 초 굴치의 임 장군이라고 전해오는 사람이 농교를 창설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언급한 임 장군은 고려 초 진천지역 호족인 임희로 추정된다. 또 임희가 초석을 닦은 농다리를 후대인 고려 중기에 후손 임연이 개축했다는 주장도 있다.

농다리 길이는 93.6m에 달하고, 1.2m가량의 높이에 너비도 3.6m 안팎이다. 지금이야 작은 하천을 잇는 다리에 불과하지만 1000년 전 기준으로는 꽤 큰 규모의 다리였을 것이다. 특히 단순히 하천에 큰 돌을 하나씩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아니다.

겉보기엔 듬성듬성 쌓은 돌무더기가 부실해 보이지만, 천년 세월을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킨 다리다. 얇게 쪼갠 대살을 엮어 대바구니를 짜듯이 돌을 얽어 견고하게 축조했다. 또 다리 교각 상류 쪽은 둥글게 만들어 물살을 견디는 힘을 최대화했고, 다리 중심부가 하류 쪽으로 휘어져 물의 힘이 다리 전체에 적절히 분배되도록 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여기에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도록 장마 때는 물이 다리를 넘쳐 흐르도록 했다. 자연 순응의 지혜와 과학적인 기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천년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초평호에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가면 하늘 다리를 만난다. 양쪽에 철근 탑을 세워 케이블로 연결한 현수교다. 하늘다리 끝에는 아치형 다리가 서있다. 이전에 수문 역할을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하늘다리와 조화를 이뤄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농다리를 건너 초평호까지 이어진 길을 초평호와 농다리의 앞글자를 따서 초롱길로 부른다. 초평호 주변은 울창한 나무들로 채워져 있다. 농다리에서 하늘다리까지는 왕복 1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농다리에서 초평호로 가는 길의 고개는 ‘살고개’로 불리는데 고개에는 오색 헝겊이 걸린 서낭당이 있다.
농다리는 28개 교각으로 돼있는데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보면 마치 꿈틀거리는 거대한 지네의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 농다리는 지네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농다리를 건너면 초평호까지 이어진 ‘미르숲’이 펼쳐진다. 이 길을 초평호와 농다리의 앞글자를 따서 초롱길로 부른다. 용을 뜻하는 우리말 ‘미르’처럼 초평호 주변은 용이 살 것 같은 울창한 나무들로 채워져 있다. 농다리에서 초평호로 가는 길에는 고개 하나가 있다. ‘살고개’로도 불리는 고개에는 오색 헝겊이 걸린 서낭당이 있다. 한 스님이 근처 부자 마을에 시주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를 괘씸히 여긴 스님이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 마을이 된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이 스님의 말에 따라 길을 내니 그곳에서 피가 흘렀고, 이후 이 마을은 망해 없어졌다고 한다. 스님이 말한 곳이 용의 허리로 이곳을 깎아 길을 내면서 용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호수가 초평호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나무데크가 놓여있어 산책길에선 시원한 바람소리와 야생화 등을 만날 수 있다. 고요한 호수에서는 물고기가 뛰어노는 듯 가끔 ‘첨벙’하는 소리도 들린다. 주위 풍광을 보며 데크를 따라가면 하늘 다리를 만난다. 양쪽에 철근 탑을 세워 케이블로 연결한 현수교다. 하늘다리 끝에는 아치형 다리가 서있다. 이전에 수문 역할을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하늘다리와 조화를 이뤄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농다리에서 하늘다리까지는 왕복 1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고, 힘든 구간이 없다.

인근 붕어마을에서도 초평호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이름처럼 민물낚시를 많이 하는 곳이어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좌대가 호수에 퍼져 있다. 하지만 올해는 가뭄이 심해 물에 떠 있어야 할 좌대들이 초록빛 저수지 바닥에 있다. 인근 두타산 전망대에서 초평호를 보면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지형이 뚜렷이 나타나는데, 이 역시 지금은 수량이 적어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진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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