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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인의 시집을 받아들고 서문을 읽다가 멈칫했다. 그는 “햇빛 밝은 날은 옷소매에 꽃 향이 묻기도 했고 맨 땅을 가다가 취우(驟雨)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리움 한 벌로 나는 일생을 벼텼다”고 쓰고 있었다. 취우라는 단어에 걸렸던 것인데, 찾아보니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소나기의 한자어가 ‘취우’(驟雨)였다. 수필가 김진섭이 ‘인생예찬’에서 “다른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 특히 염염한 하일에 경험하는 취우의 은택을 망각하여 버릴 수는 없다”고 썼다는 예문까지 친절하게 부기돼 있다.

“내 믿음으론 지옥에도 천사가 살고 있으리라/ 나무가 햇빛 쪽으로 기우는 걸 보면/ 희망 때문에 몸이 아프다/ 저 어린 희망에게 나는 젖병 한번 물린 적 없다/ 담쟁이 잎이 우표처럼 벽에 붙는 걸 보며/ 오늘은 햇살 빗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빗는다/ 한 번만이라도 천국엘, 나의 희망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함께 가자 말하지 않았는데 내 발등에는 일생이 가랑잎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이기철, ‘속옷처럼 희망이’)

시인에게 취우는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만나 장애물이었지만, 수필가에게 취우는 뜨거운 여름에 만난 ‘은택’이었다. 시인은 나무의 생명을 간절히 북돋우며 햇빛이나마 가득 받기를 염원한다. 문필가들에게 취우는 생의 도정에 만나는 빗물이지만, 대중가수에게는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모티브이다. 일찍이 가수 패티김은 박춘석 작사 작곡의 ‘초우’를 불러 여름날 가슴을 적시곤 했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 갈 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노시인이 사용한 취우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웬만하면 다 줄여서 쓰는 이 SNS시대에 웬 고색창연한 구투의 향연인가 싶었지만 은근히 끌리는 매력도 없지 않았다. 내친김에 다시 찾아보았더니 여전히 한자어이긴 하지만 그 뜻이 싱싱하고 가상한 다른 의미도 있다. 취우(翠雨), 명사, 푸른 잎에 내리는 비. 비취(翡翠) 빛깔을 말할 때의 ‘취’를 취한 비다. 푸른 비. 지상에 만연한 녹색 것들을 살리기 위해 내리는 은혜로운 비를 일컬을 때 가장 적합한 명명이 이 취우가 아닐까. 가뭄이 심각하여 농촌에서는 세차조차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서로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기상청은 이 가뭄이 8~9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니 암담할 따름이다. 푸른 잎에 내릴 취우, 간절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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