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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보존·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구축되는 것”

입력 : 2017-06-27 03:00:00 수정 : 2017-06-26 20: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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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가 겸 평론가 미나토 지히로 교수 ‘창조적 기억-창조와 상기의 힘’서 기억의 정체 탐구 기억(記憶, memory)은 무엇일까. 기억은 뇌 연구 분야의 최대 수수께끼이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모르고서는 사고나 판단, 운동 메커니즘도 알 수 없다. 또한 의식을 탐구하는 데에도 기억의 해명이 필요하다.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억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전은 기적에 대해 ‘사람이나 동물 등의 생활체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며 신체적 습관·컴퓨터 등 기계적 기억도 넓은 의미에서의 기억에 포함된다’며 기억의 과정을 기명, 보유, 재생, 재인의 4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와세다대 정치학과를 나와 각국을 떠돌며 사진을 찍고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일본 다마(多摩)미술대학교 정보디자인학과 미나토 지히로(港千尋) 교수는 저서 ‘창조적 기억-창조와 상기의 힘’(김경주·이종욱 옮김, 논형)에서 인간의 기억과 관련하여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기술 그리고 역사와 문화, 예술의 측면에서 그 함의를 심도 있게 살폈다.

미나토 교수는 ‘어떻게 한 잔의 홍차에서 기억의 대가람(大伽藍)이 출현할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며 “기억이란 각인의 ‘집적’이 아닌 지속적인 ‘생성’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회상·추억·상기가 갖는 놀라운 창조력에 빛을 비추어 예술의 현장, 역사인식, 언어현황을 횡단하면서 끝없는 구축으로서의 ‘기억’을 투시한다. 즉, 기억은 보존되어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라는 시점을 신경 생리학 연구나 기억술의 전통에서 끄집어낸다. 저자는 또한 예술 제작에 있어서의 기억의 작용을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기억의 상으로서의 사진의 감각·감정과 기억의 관계를 추론한다. 나아가 집단적 기억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까지 논한다.

저자는 기억은 급속도로 발달하는 산업이나 기술에서도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기억장치의 양적·질적인 개량이 통신기술과 손잡고 사회의 전자정보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 즉, 정보네트워크의 폭발적인 성장은 그 변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전자적인 기억계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사회의 존재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버릴지 모른다고 본다.

1장에서는 역동적인 시스템으로서의 기억의 활동을 신경세포 차원에서 개관한다. 중심이 되는 것은 1970년대 말에 제창된 이른바 신경세포군도태설이라 불리는 견해다. 제럴드 에덜먼이 뇌의 활동도 자연도태에 따른다고 주장한 도전적인 이론으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신경 차원의 기억에 대해 이 책의 입장은 기억이 신경세포군의 연속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변화로부터 출현한다고 보는 것이다.

2장에서는 기억이 구체적인 제작활동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관찰한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화가 샤를 마통,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를 거론하며 이들의 표현이나 시대는 물론 지명도도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작품 제작과정에서 기억이 본질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3장에서는 20세기 인간 기억의 존재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진’에 대해 살폈다. 저자는 사진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토그래피 기술의 탄생 배경을 조망하고, 19세기 전반 영국의 폭스 탤벗이 사진술을 발명했을 때 그것이 어떤 형태로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즉, 사진은 태어났을 때 이미 그때까지 철학이나 문학이 키워낸 문화로서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4장에서는 사회적 차원의 집단적 기억에 대해 동적인 측면에서 검토했다. 우선 고대와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기억의 역사’를 개관하고 ‘기억으로서의 역사’ 대신에 ‘상기로서의 역사’를 제안한다. 저자는 과거를 생성시킴으로써 역사를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시도를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살폈다.

책을 추천한 교토시립예술대 와시다 기요카즈(鷲田 淸一) 학장은 “끊임없이 논의를 촉발하는 것은 촉각을 핵으로 한 ‘신체의 기억’”이라며 “기념일을 내세운 국가에 의한 기억의 관리, 기억을 말소하는 집단적 행위, 변경되는 지명, 사라져 가는 언어, 이중 언어화하는 현대도시, 알츠하이머라는 의구심 속에서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만년의 데 쿠닝, 유실물보관소에 눌러 붙은 남자 이야기 등 읽을거리로서가 스릴만점”이라고 평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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