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형 쇼핑몰 내 도서관 설치 화제
도서관에서 유년을 보냈고, 하급 사서에서 국립도서관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는 거의 도서관을 배경으로 전개됐다. 그러니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어 도서관에 묻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도서관의 작가’였다.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쓰는 일을 ‘혼돈 속의 질서’처럼 격렬하게 융합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창안했다.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읽는 인간(Homo Legens), 허구적으로 꾸미는 인간(Homo Fictus)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이란 미궁으로부터 비상하기를 꿈꾸었다.
미궁일 수밖에 없는 세계를 보르헤스는 도서관 혹은 책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려 했다.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르헤스는 “도서관은 무한한 우주이고, 책은 신”이라 했다. 인간이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신이 쓴 책을 다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려우니 우주와 세계는 영원히 미궁일 수밖에 없다. 하여 바벨의 도서관이다. 바벨은 아시리아 말로는 ‘신의 문’을 뜻하지만 히브리 말로는 ‘혼돈’을 뜻한다. 이에 바벨의 도서관이란 ‘우주의 신비가 담겨진,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신비를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도서관’인 셈이다. “도서관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미래 세계의 상세한 역사, 천사들의 자서전들, 도서관의 믿을 만한 서지 목록, 수백만 개의 가짜 서지목록, 그 가짜 서지목록의 허구성을 증명한 책, 진짜 서지목록의 허구성을 증명한 책, 바실리데스의 그노시스적 복음, 이 복음의 주해서, 그 주해서의 주해서….”(‘바벨의 도서관’) 이런 ‘무한공간의 미로’에서 몽상하며 새로운 문을 열기를 그는 즐겼다.
강남 핵심의 대형 쇼핑몰 안에 도서관이 조성돼 화제다. 일상 속에서 인문학의 즐거움을 교감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라는 취지란다. 이윤 추구를 위해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쪽으로 장터가 조성됐던 흐름과는 다른 것으로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에는 학교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같은 민자 사설 도서관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품격은 높아질 것이고, 인문학적 성찰은 깊어질 터이다. 다양한 도서관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거듭 열어 나가면 우주의 신비와 신의 섭리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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