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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영부인의 눈물, 고통받던 군 의문사 유족에 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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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9 22:06:24 수정 : 2017-07-09 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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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등병의 눈물’ 총괄제작한 인권운동가 고상만씨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총괄제작한 고상만씨는 “연극에 출연한 엄마들과 군 사망자 유가족들의 염원을 담아 군 복무 중 숨진 군인 모두를 순직자로 인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등병의 엄마법’이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제원 기자
지난 5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연일 화제였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그 시기, 김 여사는 서울 대학로의 한 공연장을 찾아 연극을 관람했다. 군 의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였다.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진 고상만(47)씨가 총괄제작해 9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연극이다. 고씨는 사실 연극 ‘초짜’다. 태어나서 연극을 본 경험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하지만 이등병의 엄마는 언론 시사회 포함 총 13번의 공연이 모두 매진되고 새 정부의 ‘퍼스트레이디’가 직접 챙겨볼 만큼 화제를 몰고 왔다. 지난 5일 경기 안산시청 앞에서 만난 고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달변가였다. 연극에 무지했던 그가 직접 대본까지 쓸 수 있었던 것도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몫했을 듯싶다.

그가 전하는 김 여사의 연극 관람 뒷이야기도 풍성했다. 고씨는 언론 시사회에서 “고통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들의 손을 잡아주시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김 여사를 초청하고 싶다”고 제안한 얘기를 들려줬다. “솔직히 (김 여사가) 오시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안 오셔도 이런 연극이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으니 그런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면서.

그러나 청와대 측의 반응이 없었고 그도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공연 일정 후반부에 ‘응답’이 왔다. 고씨는 “그날(5월26일) 청와대에서 누군가 연극을 보러 온다고 들어 경호실에서 먼저 확인차 나오는 줄 알았다”며 “곧바로 김 여사가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청와대 일행 중 손수건을 적실 만큼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리며 공연을 관람하는 중년 여성이 눈에 띄었다. 고씨는 김 여사인 줄은 전혀 모르고 ‘눈물이 꽤 많은 분이 오셨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이 여성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연극이 끝나자마자 공연장을 나섰다. 순간 한 의문사 유족이 이들과 마주치면서 김 여사를 알아봤고 고씨도 그제야 김 여사의 관람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SNS에 “김 여사님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찾아와 위로해 주셨다”며 “군 유족이 받은 ‘최초의 국가적 위로’”라고 글을 올려 감사함을 내비쳤다.

이 연극은 관심을 끌지 못했던 군 의문사 문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4성 장군 출신으로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백군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공연장을 찾았다.

고씨는 “첫날 공연에 백군기 전 의원께서 오셨는데 공연을 다 보시고는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흐느끼시더라”며 “군에서 최고위 계급에 있던 분의 진심어린 사과에 저도 울컥했다”고 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지원하며 군복 위에 노란 리본을 달아 소신 있는 인상을 줬던 황 전 총장은 혼자 연극을 보러왔다. 황 전 총장은 공연 관람 후 고씨에게 “군에서 죽어간 군인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지, 군대가 뭘 잘못했는지 알았다. (연극을 보러) 오길 잘했다”고 공감을 나타냈다. 지난 6월 말에는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가 고씨와 군 의문사 유족을 만나 “장관이 되면 다시 한번 자리를 모시고 그 고통을 듣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연극은 군에 입대한 아들 정호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못 견뎌 숨지나 군은 자살로 은폐하려 하면서 부모가 의문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2014년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도 연극을 봤다.

고씨는 “윤 일병 어머니께서 연극 내용에 공감하고 (출연진과 연출진에게) 떡을 보내오기도 했다”며 “연극을 보시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슴에 맺혀 있는 한이 치유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고씨는 1998~1999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며 군 의문사 활동의 첫 사례 격인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조사한 바 있다. 이후 만난 군 의문사 유족이 500여명에 달한다.

그는 “대부분 유족의 첫 말씀이 ‘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라며 “지난해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수가 73명인데 여전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연극에서는 실제로 군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 9명이 무대에 올랐다.

고씨는 “이미 자식을 잃은 엄마들이 연극을 통해 군 의문사 캠페인을 펼치는 이유가 ‘누군가는 우리처럼 당하지 말라’고 알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추가 공연을 위해 서울의 한 문화재단과 논의 중이고, 영화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고씨는 지난 1일부터 안산시의 ‘4·16 세월호 참사 기록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군 의문사와 세월호 참사 모두 살아있는 게 미안한 엄마들의 아픔이 여전하고 밝혀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될 이유가 있는 싸움입니다.” 다부진 인권운동가답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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