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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기자의와인홀릭] 세계 와인의 심장 보르도 메독을 가다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17-08-03 09:05:07 수정 : 2017-08-03 14: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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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샤토에서 하룻밤 자보니
보르도 '메독의 작은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불리는 샤토 베이슈벨 전경
포도밭을 손 닿을 듯 곁에 둔 7월 중순의 보르도 메독 지방의 호텔 샤토 꼬르데이앙 바쥬(Chateau Cordeillan Bages)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 저녁 노을은 느릿느릿 내려앉고 그림자 커지면 포도내음 가득싣은 한여름 바람이 뺨을 간지럽 힌다. 투명한 루비색 와인이 목젖을 타고 흐르면 나는 보르도의 포도밭이고 바람이고 저녁햇살이 된다. 띠끌만큼의 번잡함도 순백으로 만들어버리는 더할나위없는 힐링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과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으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프랑스 그랑크뤼 클라세 샤토 랭쉬바쥬(Chateau Lynch-Bages)가 운영하는 이 곳에서는 와인을 곁들이며 여름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샤토 꼬르데이앙 바쥬 레스토랑에서 한눈에 보이는 포도밭
샤토 꼬르데이앙 바쥬 레스토랑에 바라본 포도밭 전경

보르도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 생산지다. 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를 비롯한 최고급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가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지시해 만들어진 그랑크뤼 클라세 1∼5등급은 모두 61개. 이중 보르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지롱드강 왼쪽 지역인 메독에만 60개가 몰려있을 정도로 보르도에 가장 명성이 높다. 여기에는 1등급 샤토 5개 중 4개가 포함돼 있다.
메독은 모두 8개 세부지역으로 이뤘졌는데 지역 AOC인 메독(Medoc), 오메독(Haut Medoc)과 마을(꼬뮌) AOC인 마고(Margaux), 물리스엉 메독(Moulis en Medoc), 리스트락 메독(Listrac Medoc), 생쥘리앵(Saint Julien), 뽀이약(Pauillac), 쌩떼스테프(Saint Estephe) 등이다. 메독지역은 주로 온도를 잘 머금는 자갈토양이 많아 따뜻함을 좋아하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가장 잘 자란다. 메독에서 최상급 카베르네 소비뇽이 생산되는 배경이다.
메독 마고마을의 크랑크뤼 클라세 샤토 라스꽁브의 고풍스런 전경
플라타나스 고목 한쌍이 어우리진 샤토 라스꽁브 테라스

메독은 이처럼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보르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색창연한 그랑크뤼 샤토의 웅장함과 화려함도 빼놓을 없다. 꼭 가봐야 할 곳이 마고 마을의 그랑크뤼 2등급 샤토 라스꽁브(Chateau Lascombes)로 기사인 앙뜨완 라스꽁브가 1800년대말에 세운 건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샤토 외벽은 온통 넝쿨 식물로 뒤덮여 고풍스러우면서도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특히 샤토 테라스 앞에는 낮은 키의 플라타나스 고목 두 그루가 마치 한참 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커플처럼 얽혀 시원한 자연 그늘을 만들어 준다. 샤토 레스토랑에서는 미슐랭 스타급의 오찬을 라스꽁브 와인과 즐길 수 있다. 여유있는 식사 뒤 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후식으로 스위트 와인과 알마냑 한잔을 곁들이면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샤토 라스꽁브의 양조를 책임지고 있는 디렉터 도미니끄 베프브(Dominique Befve)
샤토 라스꽁브 홍보 매니저 까린 바비에(Karine Barbier)씨가 샤토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적인 양조가 미셸 롤랑이 컨설팅하는 라스꽁브 와인들은 전형적인 마고 와인과는 좀 다르다. 보통 마고는 날카롭고 도회적인 남성 느낌의 와인을 빚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많이 사용하지만 라스꽁브는 후덕하고 부드러운 여성 이미지가 강한 메를로를 더 많이 심고 있다. 현재 라스꽁브를 이끄는 디렉터 도미니끄 베프브(Dominique Befve)가 2001년 대대적인 토양 분석에 나섰는데 그는 이 지역 떼루아에는 메를로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뽑아내고 11ha에 메를로의 비중을 높였다. 라스꽁브는 이런 노력을 통해 아주 우아한 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베프브는 그랑크뤼 1등급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서 테그니컬 디렉터를 지낸 와인 양조 전문가다. 그는 프랑스 의료조합인 MACSF가 라스꽁브를 인수한 2001년부터 합류, 라스꽁브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새롭게 탄생한 와인임을 알리기 위해 문장, 기호도 새로 만들고 색상도 보라색으로 바꿨다. 보틀 목에 새겨진 동서남북의 방향 표시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다는 뜻이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라스꽁브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샤토 라스꽁브의 블렌딩하기전 품종별 와인.

세컨드 와인 슈발리에 드 라스꽁브(Chevalier de lascombes)는 와이너리 설립자인 앙뜨완 라스꽁브를 기리기 위해 기사를 레이블에 담았다. 매해 어떤 와인으로 만들지 결정해 블렌딩이 달라진다.현재 라스꽁브는 마고에 120ha, 오메독에 10ha의 포도밭을 두고 있다. 포도는 모두 손수확을 하며 광학기계를 통해 최상급 포도알을 골라내는 현대적인 생산시설도 갖춰 좋은 품질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오메독 그랑크뤼 클라세 샤토 라 라귄의 화려한 객실 모습.
샤토 라 라귄 객실에서 바라본 광활한 포도밭 풍경

1730년 오메독에 세워진 그랑크뤼 3등급 샤토 라 라귄(Chateau La Lagune)도 잊지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샤토 건물은 현재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는데 영화속에나 등장할 것같은 중세풍의 객실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특히 1층의 입구 왼쪽의 객실은 여성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룸이다. 높은 천정부터 바닥까지 드리워진 고풍스런 커튼과 가구, 침대 등이 왕족의 호화로운 궁전을 연상케 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창문을 열면 맑고 깨끗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셰프의 특별한 서비스가 담긴 음식들을 라 라귄의 와인과 함께 즐기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객실은 6개로 12명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서로 아는 한 그룹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커플이 2명만 먼저 예약했다면 다른 손님은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한다. 객실료는 조식포함 방 1개에 700유로 정도이며 셰프가 24시간 대기하며 서비스한다. 신청은 이메일로만 받는다.
샤토 라 라귄 레스토랑의 메뉴를 소개하는 직원.
샤토 라 라귄 레스토랑의 아침 식사

라 라귄은 2000년 장 자끄 프레(Jean-jacques Frey) 가문에 인수됐으며 프레 가문은 2004년 180억원을 투자해 시설을 현대적으로 개보수, 보르도의 와인 명가로 거듭나고 있다. 연간 27만병을 생산하는 라 라귄의 오크통이 빽빽하게 들어선 저장고와 생산시설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프레 가문은 라 샤펠(La Chapelle) 로 유명한 프랑스 북부론의 폴 자볼레 애네(Paul Jaboulet Aine), 부르고뉴 샤토 꼬르동 씨와 샴페인 하우스 빌레카르 살몽(Billecart Salmon) 지분 일부를 소유한 대부호다. 장녀 카롤린 프레(Caroline Frey)는 보르도 최고의 양조학교에서 와인 양조의 대가인 드니 뒤부르뒤외(Denis Dubourdieu)의 가르침을 받고 2004년부터 샤또 라 라귄, 2006년부터 폴 자불레의 와인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오가닉과 비오다이나믹을 통한 생물다양성 보존이다. 이때문에 라 라귄의 양조를 책임진 2004년부터 오가닉을 도입해 어떤 화학적인 물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 2016년 비오다이나믹 농법도 시작했는데 메독 좌안지구에서 이 인증을 받은 곳은 라 라귄을 포함에 3곳 뿐이다. 카롤린은 이런 환경보존에 기여한 공로 기사 작위도 받았다.

샤토 라 라귄 브랜드 앰베서더 마리나 앤 멘데즈씨가 프레 가문의 장녀로 양조를 책임지는 카롤린 프레씨를 소개하고 있다.
샤토 라 라귄 와인들

라 라귄은 왜 올가닉 와인을 고집할까. 샤토에서 만난 브랜드 앰베서더 마리나 앤 멘데즈(Marina Ann Mendez)는 “올가닉 와인은 많은 에너지를 갖게되며 굉장히 엘레강스한 파워를 지니게 된다. 토마토도 오가닉 토마토를 먹으면 다양한 맛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라 라귄은 그랑크뤼 3등급이지만 가격이 합리적인 점도 돋보인다. 사실 오가닉 농법은 훨씬 비용이 많이 들지만 라 라귄은 오래 거래하는 파트너와 시장을 중요하게 여겨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덕분에 착한 가격에 그랑크뤼 3등급 와인을 마실수 있는 셈이다. 라 라귄 2011은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30%, 쁘띠 베르도 10%를 블렌딩했는데 수령 45년~60년의 올드바인을 사용하며 산도의 밸런스가 뛰어난 와인이다. 라 라귄의 세컨드 와인인 마드무아젤 엘(Mademoiselle L)은 2004년이 첫 빈티지로 젊은층에서 호응이 좋다고 한다. 라 라귄은 연간 12만병, 세컨드와 서드 와인은 각각 15만병씩 생산된다.
샤토 베이슈벨 와이너리 전경
최근 리뉴얼을 마친 샤토 베이슈벨의 오크 저장 셀러
돛을 반쯤 내린 샤토 베이슈벨의 상징이 그려진 생산시설 정문
쌩줄리앵의 그랑크뤼 4등급 샤토 베이슈벨(Chateau Beychevelle)의 저택은 17세기에 지어졌는데 ‘메독의 작은 베르사이유 궁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원래 1565년 주교인 프랑수아 드 푸아 캉달(Francois de Foix Candale)이 보르도 시를 벗어나 싱글빈야드를 갖기 위해 이 곳에 포도밭을 매입해 별장식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교는 샤토를 그의 조카 마르게리트 드 푸아 캉달(Marguerite de Foix Candale)에게 물려줬고 그녀와 결혼한 에페르농(Epernon)의 공작인 장 루이 노가레 드 라 발레뜨(Jean Louis Nogaret de la Valette)가 소유하게 된다. 그는 앙리3세가 끔찍하게 아끼던 프랑스 해군 제독으로 당시 상당한 권력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롱드 강을 지나는 선박들은 그의 샤토앞에 다다르면 충성의 표시로 ‘베쓰 부왈(baisse voile· 돛을 내려라)’이라고 외치며 돛을 내렸다고 한다. 이같은 일화를 담아 베이슈벨이라는 와인 이름이 탄생했고 돛이 반쯤 내려진 선박이 베이슈벨의 상징이 됐다. 이후 베이슈벨의 소유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18세기에는 보르도 의회 의장인 쟝 밥띠스트 다바디(Jean-Baptiste d’Abadie)에게 이전됐는데 기후가 안좋아 와인으로는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 다만, 베르사이유를 본따 지금의 정원이 그때 완성됐다고 한다. 1989년 일본의 산토리 그룹이 참여한 그랑 밀레짐 드 프랑스(Grands Millesimes de France)가 현재 베이슈벨을 운영하고 있다.
샤토 베이슈벨 홍보담당 제랄딘 상띠에(Geraldine Santier)씨가 베이슈벨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샤토 베이슈벨 와인들
와인은 비록 4등급이지만 1등급 못지 않은 품질을 자랑한다. 베이슈벨이 생산되는 생줄리앵은 뽀이악과 마고 사이에 끼인 좁은 지역인데 베이슈벨은 뽀이악의 파워풀함과 마고의 섬세함이 공존하는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은 완성되기 전에 품평회를 통해 와인을 사전에 판매하는 앙프리뫼(En-Primeur) 시스템을 통해 전세계에 공급되는데 베이슈벨 최근 빈티지인 2016년은 올해 앙프리뫼를 통해 100% 다 팔렸다고 하니 베이슈벨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다. 2011 빈티지를 시음했는데 카베르네 소비뇽 47% 메를로 47% 카베르네 프랑 4% 쁘띠 베르도 2%가 블렌딩됐으며 다른 생줄리엥 샤토들보다 메를로 비중이 높아 좀더 우아한 와인으로 빚어진다.

보르도(프랑스)=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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