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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기기묘묘한 호모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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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30 23:50:47 수정 : 2017-10-30 23: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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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토지’ 각양각색의 인간들 등장 / 최근 부모 자식 간 법정싸움 증가에 우울
작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그야말로 거대한 땅이다. 힘차게 솟아오른 큰 산이 있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이 있는가 하면 격류가 있고 세월의 벼랑에 새겨진 역사의 족적이 있다. 민족의 운명과 한이 있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생명의 벼리가 깃들어 있으며 웅숭깊은 휴머니즘이 있다. 그 큰 땅에는 당연히 등장인물도 많고 그만큼 사건도 많다.

겁탈당하고, 불륜행각으로 도망치고, 병들어 죽고, 총 맞아 죽고, 고문당하고, 싸우고,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하고, 쫓고, 쫓기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등 수많은 행위가 겹겹이 중첩되면서 기기묘묘한 사건을 연출해낸다.

‘토지’를 읽다 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하나의 종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종차를 보이는 인간으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월선이처럼 가장 선한 인간에서, 조준구나 김두수처럼 가장 악한 인간까지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길상이처럼 노비의 신분에서 상전이었던 서희와 결혼해 몰락한 최씨 가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나중에는 관음탱화를 그리는 예술가로 역동적인 존재 전환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임이네처럼 시종일관 추악한 탐욕의 화신으로 나오는 인물도 있다. 작가는 최참판가를 중심으로 주요 인물의 성격도 잘 그렸지만, 방계의 부정적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도 웅숭깊은 장기를 보였다.

김평산은 매우 교활하고 사악한 인물로 최치수 살해를 귀녀와 공모했다가 처형당한다. 그러자 그 아내 함안댁은 자살하는데, 이런 가정의 아들 김두수는 동생 한복과 함께 평사리에서 쫓겨나다시피 도망쳐 유리걸식하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매우 파괴적이고 간악한 인간형이 된다. 공노인의 수양딸 공송애를 겁탈해 이용하는가 하면, 심금녀를 겁탈하고 고문해 치사케 한다. 일제의 밀정과 순사부장으로서 반역적인 행위만을 일삼는다. 김두수는 이 소설에서 악한의 대명사이다. 난세의 인간성이 어디까지 훼손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준구는 최참판가의 재산을 부당하게 가로채 거부로 살아간 인물이다. 최서희로부터 받은 집 매매대금 5000원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한 그는 10만원까지 재산을 불린다. 현재의 가치로 친다면 5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가 그리 행복하게 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비록 경제적으로 몰락하진 않았지만, 3년 넘게 앓다 죽은 그의 최후를 작가는 ‘눈을 부릅뜨고 죽은 조준구의 형상은 끔찍했던’ 것으로 그린다.

이런저런 부정적 인물이 출몰하지만 ‘토지’에 부모 자식 간의 송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부모 자식 간 법정싸움이 증가세라는 기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부양료 소송만 하더라도 2008년 162건이던 것이 지난해 270건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친정아버지에게 외손자의 대학 등록금을 내달라고 소송하고, 자식에게 부양료를 지급하라고 소송한다. 어려워진 경제 사정 탓일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오륜의 덕목마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시절이 도래한 것일까. ‘토지’에서 송관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 살아가는 게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검정과 흰빛으로 구별지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라.” 사람답게 사는 것은 참 어려운가 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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