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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치 못한 아들 … 그래도 '엄니'는 행복했다

입력 : 2017-11-02 20:53:24 수정 : 2017-11-02 20: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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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 감독 '채비' / 시한부 선고받은 엄마 / 발달장애 서른살 아들 / 모자의 이별준비 그려 / 밥짓기·빨래·장보기… / 홀로서기 과정에 집중 / '따스한 진정성' 느껴져
조미료를 뿌리지 않은, 차분히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정화되는 고마운 영화다. ‘엄마’. 그냥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단어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 함께 보낸 시간과 켜켜이 쌓인 다양한 감정들, 힘들 때면 찾게 되는 이름, 엄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이들에겐 언젠가 엄마와 이별하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영화 ‘채비’는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이 언젠가 맞닥뜨릴 이별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조영준 감독의 ‘채비’는 펑펑 울리는 영화라기보다는 몹시 착한 가족영화라고 해야 더 어울릴 법하다. 일곱 살 같은 서른 살, 발달장애를 가진 30년 내공의 프로 사고뭉치 인규(김성균)와 그를 한시도 쉴 새 없이 24시간 돌봐야 하는 프로 잔소리꾼 엄마 애순(고두심)이 머지않은 이별의 순간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새벽 일 나가는 길, 지각한 날에도 계단이 나오면 인규는 반드시 엄마와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한 칸씩 내려가야 하고, 하루 세 끼 반찬에는 꼭 ‘계란프라이’가 올라야 하는 떼쟁이다.

이런 아들을 둔 엄마는 강하고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다.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를 가질 만한 마음의 여유 또한 없다.

“교회에도 좀 나오세요”라는 목사의 말에 애순은 “한날한시에 뒈지게 해달라고 쑈부나 쳐주씨오”라고 냉정히 박대한다.

고단한 삶에 꺾였던 그도 여러 차례 아들과의 동반자살을 기도했었지만 좀 더 모질지를 못했다. 창틀에 남은 청테이프 자국은 방한용이 아니라 번개탄을 피우기 위한 흔적이다.

수전증인 줄로만 알았던 손이 급격하게 떨려오고 두통이 더욱 심해지자 찾아간 병원에서 애순은 뜻밖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보다는 아들 인규의 앞날을 위해 특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주변의 도움에도 날로 힘겨워지자 마침내 인규에게 진정한 이별의 의미를 가르쳐주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빈 예배당에서 혼자 억울하고 답답한 삶을 토로하다 “지발 한번만 살려주씨오”라고 하늘에 간청하는 모습은 ‘부족한’ 자식을 두고 죽어야 하는 엄마의 절절함이 터뜨리는 통곡으로 이어진다.

“이 엄니는 니 덕에 한 번도 심심했던 적 없이 매일매일 재미졌어.”

온전치 못한 아들 탓에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살아온 애순은 지난날들을 ‘행복’으로 규정한다.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된 인규가 문상객들을 맞는다.

“니는 이 엄니가 하늘나라 갔을 때 씩씩하게 웃으멘서 손 흔들어 주는 기여. 알것찌이.”

‘엄니’의 말을 떠올리곤, 눈물을 참아가며 힘주어 보이는 아들 인규의 미소와 온화한 영정 속 엄마 애순의 미소가 만난다.

빈집, 엄마가 일하던 조그만 구멍가게, 가위바위보 하던 계단 등은 이제 인규에겐 ‘엄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인규 밥 먹어야 돼. 밥.”

혼잣말하는 인규가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다. 사진 속에서 여전히 자신를 지켜보고 있는 ‘엄니’를 위해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다. 등산 동호회에도 가입한 인규가 정상을 향해 묵묵히 올라간다.

영화는 모자의 이별 준비와 그 과정에 집중한다. 남겨질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홀로 서야 하는 아들, 이들 사이에 놓인 큰 딸 문경(유선)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막연하고 커다란 슬픔일 것만 같았던 이별 준비는 인규의 홀로서기를 위한 밥짓기, 빨래하기, 버스 타기, 장보기 등 실제 생활과 밀접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진정성을 더하며 공감과 감동을 부른다.

평소 애순이 아끼던 액자 속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은 지나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즐거웠던 한 때다. 어린 인규를 업고 있는 젊은 시절 애순과 이제는 인규 등에 업힌, 30년 차이의 두 애순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판타지 장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누나 시집갔어. 근데 인규는 못 갔어. 사진 봤어. 누나 하얀 옷 입은 사진. 이뻤어. 같이 못 살아서 슬펐어”라는 인규의 대사에선 장애를 가진 동생을 결혼식장에 데려가지 않았던 누나 문경의 복잡했을 마음이 엿보인다. 

김성균은 버스에서 내리는 첫 장면부터 발달장애를 겪는 인규의 몸짓과 발걸음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수많은 다큐 영상을 보거나 직접 복지관에 찾아가 세밀히 관찰한 결과다.

“장애인과 엄마라기보다는 늘 어린이 같은 아들과 엄마라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엄마를 떠올리면서 관람하시라. 영화 속 발달장애 아들보다 영화 밖 내가 엄마를 대함에 있어 하나라도 다른 게 뭐 있더냐. 엄마에게 아들(자식)은 모두 다 똑같기만 한 것을.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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