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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범죄피해자 지원 체계 열악… 더 큰 관심 쏟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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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0 20:56:54 수정 : 2017-12-19 10: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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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숙 KOVA 상담국장 / 언론 조명 땐 피해자들 반짝 주목 / 보도 끝나면 ‘잊혀진 사람’ 취급 / 수사 결과 발표됐다고 끝 아냐 / 정신적·금전적 고통에 시달려 / 가해자 교정기금 年 2조원 규모 / 피해자 위한 기금은 1000억 그쳐 “피해자들이 자기 사건이 궁금해도 물어볼 데가 없어요. 경찰에선 수사 끝나면 ‘검찰이나 법원에 물어보라’고 하지만 검찰이나 법원은 잘 안 알려주죠. 답답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범죄피해자 상담 전문가인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상담국장은 범죄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범죄피해자 상담 베테랑인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상담국장은 “누구나가 각종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이젠 국가와 사회 모두가 범죄피해자 지원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상윤 기자

안 국장은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범죄피해자 상담 베테랑이다. 실제 그가 지난해 수행한 상담 건수는 2029건. 협회 소속 700여명의 상담사들이 지난해 진행한 전체 상담 건수가 5119건인데 절반가량을 홀로 담당한 셈이다.

KOVA는 범죄피해자에 대한 열악한 지원에 문제의식을 가진 법조인들과 지역 유지들이 의기투합해 2011년 설립됐다.

KOVA는 단순 강도·상해부터 강간·살인 등의 강력 사건 피해까지 정도에 따라 치료비·생계비를 지원하거나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의료기관·상담기관 등에 연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아동·노인 등 다른 분야 상담과 달리 범죄 피해자 곁에서 수사상황이나 법률·경제적 조언도 해야 해 수사기관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대부분의 상담은 경찰의 의뢰로 진행되지만 피해자들이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범죄피해자 지원 체계는 피해자가 스스로 방도를 찾아야 할 만큼 열악하다는 얘기다.

안 국장이 보는 범죄피해자는 언제나 외롭다. 그나마 사건이 언론에 조명되면 한때나마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 역시도 가해자가 구속되거나 기소되는 등 사건이 정리되면 철저히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그는 “사건이 벌어지면 기자들이 찾아와 유족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해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그러면서도 보도가 끝나고 나면 전화도 안 받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이영학 사건’은 그 전형이었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피해자 여중생 유족들을 접촉해 심경을 듣는 언론사가 적지 않았지만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지자 유족들은 어느 순간 ‘잊혀진 사람’이 돼 버렸다. 범죄피해자들은 항상 그랬다.

“언론이나 경찰이나 범죄 피해자들을 범죄 사실을 드러내는 도구 정도로 치부하는 게 현실이죠. 수사가 끝나면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모두가 ‘끝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재판에 불려나가는 데서 오는 정신적 피로감뿐 아니라 금전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폭행이나 상해로 입원한 피해자가 돈이 없어 퇴원해야 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범죄피해자 지원 전반을 담당하는 검찰청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급보증을 서주는 사례도 있지만 “추후 영수증 처리가 원칙”이라며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안 국장이 보는 우리나라 피해자 지원 체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한 범죄 피해를 입더라도 어떤 경찰관과 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찰관은 피해자 지원 관련해 정리해 놓은 안내서 한 장을 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일을 겪어본 적도 없고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안내서를 꼼꼼히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서에 피해자 전담경찰관들이 1∼2명밖에 없는 데다 청문감사실 아래서 다른 분야의 일까지 해야 하고 만성적인 예산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안 국장이 피해자 상담의 절반가량을 맡는 것도 “내가 하면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의 요구에 따라 피해자 상담을 하더라도 받는 돈은 없다. 말 그대로 ‘봉사’인 셈이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이지만 최근 “범죄 피해자를 돕겠다”고 나서는 상담사들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범죄 피해자들이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크다고 한다.

안 국장의 바람은 하나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인권을 보다 더 중시하는 것. “가해자 교정을 위해 들이는 돈이 매년 2조원 규모인 데 반해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은 이것의 5%에 불과합니다.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고, 누구라도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피해자 지원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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