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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또치쌤' 고창석 교사 떠나보낸 눈물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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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2 16:03:01 수정 : 2017-11-13 10: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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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바닷바람이 분 지난 11일 목포신항. 세월호 참사 이후 3년여 만인 지난 5월5일 미수습자 9명 가운데 처음 유해를 찾은 단원고 고창석 교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 장만채 전남도 교육감 등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온 고인이 따뜻한 세상에서 영면을 기원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9명 가운데 처음으로 유골이 수습돼 신원이 확인된 단원고 고창석 체육 교사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연합뉴스
고 교사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이 있던 객실을 뛰어다니며 탈출을 돕다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고인이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만의 참변이었다.

당시 제자들은 고 교사의 짧은 머리카락이 고슴도치를 닮았다면서 ‘또치쌤’이라고 불렀다. 고 교사는 대학생 때 인명 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 했다. 다른 학교 근무 시절에는 학교에 불이 나자 가장 먼저 소화기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교사다.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 때도 앞장서서 학생들의 탈출을 도왔다. 

고 교사는 참사 당일 아침 부인에게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이날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들도 고인의 관 위에 흰 국화를 놓으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차는 세월호가 놓인 목포신항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수습 활동을 함께한 현장 작업자들과 인사를 한 뒤 오전 9시쯤 신항을 떠났다.

3년 넘게 마음을 졸여온 고 교사 부인은 “아이들한테 아빠를 못 찾아줄까봐 항상 두려웠는데 일부라도 유해를 수습하고 많은 도움으로 명예롭게 보내드려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 교사의 운구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오후 2시30분쯤 조문이 시작됐다. 조문객들과 유족은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추모의 뜻을 나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조문한 뒤 자리를 떠났다.

장례식장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 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장만채 전남도 교육감 등의 화환이 놓였다.

고 교사는 직무수행 중 순직한 것으로 인정받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사흘간 장례식을 치른 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은 안타깝게도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목포=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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