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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힘들다 호소하면 “버텨라” 꾸지람…벼랑 끝 내몰리는 아이들

입력 : 2018-02-22 14:12:11 수정 : 2018-03-02 20: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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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떠올리는 10대… ‘한때 방황’으로 넘기지 말아야 / “쓸모 없는 나”… 年 200~300명 목숨 끊어 / 가정 불화·교우관계 등 원인 복합적 / 자살을 문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 / 4% “구체계획 세워” 2.6% “실제 시도” / 不通에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 / / 자녀가 도움 청하면 심각하게 인식 / 부모가 노력하는 모습 보이면 큰 힘
아동학대, 학교 폭력, 과도한 학습 부담 등 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하고 기를 못 펴게 하는 적폐가 즐비합니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곧 부모와 국가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며 꿈을 심어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청소년 氣 살리자’ 시리즈는 청소년들의 육성을 있는 그대로 싣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발언대’가 되겠습니다.
#1. 고교입시에 실패한 뒤 자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만뒀어요. 그 일로 엄마는 “나가 죽으라”고 했고 아빠도 거드셨죠.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은 늘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받을 짓을 해라”, “네가 힘든 일이 뭐가 있냐”고 말씀하세요. 저는 매일 상처받지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마음 털어놓을 곳도 없습니다. 너무 지쳤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싶어요.

#2. 저는 예전부터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폭식을 하기도 해요. 자퇴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버티라고만 하십니다. 부모님이 억지로 센터에 보내서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는 제게 “나약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부모님께 제가 힘들다고, 사실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었다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어요. 하지만 위로는커녕 “지금 죽겠다고 협박하는 거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더 이상 살아서 뭐하나’ 생각이 들어요. 앞길이 너무 막막합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자살’을 검색하면 꽤 많은 청소년이 이 단어를 언급하며 진지하게 실행을 고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살은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로 매년 200∼300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지난해 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7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중·고교생 6만여명 대상)에 따르면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학생은 12%였다. 구체적으로 자살계획을 세운 학생은 3.9%,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은 2.6%였다. 청소년 100명 중 12명이 자살을 생각하며 2∼3명이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청소년 자살은 성인과 다르게 원인을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려우며 충동성이 강하다. 전문가들은 학교 안팎의 각종 스트레스와 소통의 부재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악화시켜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해결책으로 선택하는 청소년

중학생 A양은 부모님과 관계에서 큰 문제가 없었고 친구도 많았지만 어느 날 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TV에 나오는 스타들처럼 멋진 인생을 꿈꿨던 B군은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데 좌절하며 막연히 자살을 생각하던 차에 사소한 일로 부모와 다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격이 밝고 공부도 잘했던 C군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장난친 것이 학교폭력 문제로 커지자 수치심과 두려움에 죽음을 선택했다.

학생들이 생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와의 불화, 학업 스트레스, 학교폭력 등 다양하지만 원인은 한 가지로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각자 여러 가지 부정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홍현주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장(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청소년 자살은 어른들의 눈높이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청소년기의 최대 이슈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입장에서 이상과 현실이 너무나 멀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해결책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자신의 힘으로 환경을 바꾸기 어렵고,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뿐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살을 떠올리기 쉽다.

자살을 미화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학생들이 죽음을 ‘낭만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현재 서강대학교 커뮤케이션학부 교수는 “드라마, 영화, 웹툰 등 청소년들이 흔히 접하는 감성적 콘텐츠에 자살 관련 장면이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심지어 매력적인 스토리로 전달되기까지 한다”며 “관련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제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절된 대화 통로에 청소년 정신건강 갈수록 악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1∼9월까지 집계된 청소년 상담 26만여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대인관계 문제(23.2%)였다. 학업진로가 17.8%, 정신건강이 16.0%로 그 뒤를 이었다.

그중 정신건강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2013년 상담과 비교했을 때 학업 진로고민은 25.8%에서 8%포인트 낮아진 반면 정신건강은 9.2%에서 7%포인트가량 올랐다. 실제 자살을 실행하거나 시도하는 청소년의 80∼90%가량은 정신병리학적 원인으로 밝혀지며 그중 절반 이상이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은 ‘소통의 부재’를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양미진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본부장은 “요즘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늘 경쟁 상황에 놓여 있고, 개인 성취에 매몰돼 있어 친구들과 관계 맺기가 쉽지 않다. 얼마 안 하는 소통도 SNS나 게임 등 자극적인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팽팽하다”며 “이런 경우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바로 우울이나 불안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부모와의 소통은 또래보다 더 어렵다. 부모는 아이의 고민을 ‘한때’의 방황으로 치부하며 아이들은 힘든 일을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김세진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의 상담부장은 “위기상태 아이들의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면 답답한 경우가 많다. 아이가 죽고 싶다고 하는데도 ‘저러다가 말 거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등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모, 형제, 또래와 관계가 공고하고 소통이 원활한 청소년은 보호인자가 형성돼 스트레스를 쉽게 이길 수 있고 문제상황에서도 극단적인 생각에까지 이르지 않는다.

홍현주 소장은 “자살 청소년이 특별한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당시 대인관계의 끈이 느슨하다는 특징을 보인다”며 “아이들은 힘들 때 부모나 선생님 등에 도움을 청해야 하며, 어른들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화하며 학교와 지역 상담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청소년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혹시 자살을 계획하며 이 글을 보게 된 친구들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저희 아빠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술에 취해 제게 수시로 욕설을 퍼붓고 자주 때렸죠. 중학생 때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여러 번 자해를 했어요. 이것 때문에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꾸준히 먹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와서 주희(가명)라는 친구와 친해졌어요. 제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집에서는 상처 받았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 덕에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주희랑 크게 싸웠어요. 그런데 주희가 친구들에게 제 흉을 보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는 왕따가 됐습니다.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데 친구에게도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법을 검색해 보다가 학교 근처 빌딩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에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채팅을 시작했어요. 살고 싶은 생각이 없고 채팅이 끝나면 뛰어내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담선생님은 정성껏 제 얘기를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상황이 제 잘못이 아니라고,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어요. 진심을 털어놓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처음엔 알려주기 싫었지만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제 얘기를 듣고 물어봐주셔서 저도 제 연락처와 위치를 알려드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곧 경찰아저씨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셨어요. 그 후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도움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꾸준히 상담받고 있습니다.

제 문제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더 이상 죽음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옥상에 저를 구하러 와준 경찰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상담 선생님들을 떠올려요.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사하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혹시 목숨을 버릴 생각이 있는 친구가 있다면 지금 1388에 전화하거나 사이버상담을 받아보기를 추천해요. 부모님께 알려질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익명으로 상담할 수 있거든요. 죽을 것처럼 힘든 시간을 넘기니 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요즘도 힘들 때 학교 상담실보다는 사이버상담센터를 찾는답니다. 속는 셈치고 꼭 상담받으셔서 위기를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힘내세요!”

위 사연은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에서 소개한 상담 우수사례 학생의 소감을 정리한 내용이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는 채팅, 문자, 게시판 등을 통해 24시간 청소년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 중 자살, 성폭력, 가출 등 고위험 상황에 처한 청소년이 파악되면 경찰과 협력해 현장에서 구조한다.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은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홈페이지(www.cyber1388.kr)에 접속하면 된다. 카카오톡 플러스에 #1388을 추가하고 상담받을 수도 있다. 전화는 1388, 문자는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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