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설득’ 부담만 안고 돌아온 文 [뉴스분석]

기대 못미친 한·미정상회담 / 트럼프 “지금은 빅딜이 맞다” / 개성공단 등 제재 유지 재확인 /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 서두르기보다 ‘올바른 합의’ 강조 / 文 “남북정상회담 조속 추진” / 트럼프 “북한 입장 알려달라”

부부동반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이례적으로 동석한 이날 양국 정상 단독회담은 모두발언, 기자회견을 포함해 29분간 진행됐다. 워싱턴=뉴시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양국의 틀어진 관계를 풀려고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달려갔으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북한을 달랠 방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되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돌아왔다.

11일(현지시간)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공식화된 건 그나마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긍정적 신호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또는 남북 접촉을 통해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 달라”고 답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정상회담 결과 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 간 합의를 이루는 ‘톱다운’ 방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도 같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을 향한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회담에 앞서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인도주의적인 일’을 논의하고 있고 나는 솔직히 이 논의가 괜찮다”며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언급했다. “한국이 북한을 식량이나 다양한 것으로 돕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백악관은 회담 후 “양 정상은 여전히 린치핀(linchpin·핵심축)인 한·미동맹의 힘을 지속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이고 대화를 위한 문이 계속해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그러나 북한 비핵화 방식 등 핵심 사안을 놓고선 근본적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번 정상회담이 서로 제 할 말만 하면서 사실상 ‘노딜’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다양한 ‘스몰딜’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단계적(step by step)으로 조각을 내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빅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가 원하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선 “적기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대북제재 유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굿 이너프 딜’, ‘조기 수확’ 등 비핵화 단계적 해법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그것은 ‘스텝 바이 스텝’이며 빠른 과정이 아니다”며 “빨리 간다면 올바른 합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3차 북·미 회담이 열릴 수 있으리라는 그런 전망을 세계에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속도차’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에게 달렸다”고 여지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로즈가든을 통해 정상회담장으로 향하다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오벌오피스에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한·미의 눈높이가 다른 게 재확인됨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12일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계기로 올해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더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잖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 대북제재 완화를 지렛대로 활용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던 현 정부의 복안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뭔가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게 문 대통령의 처지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이 미국의 변화된 입장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이달 말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밤 귀국해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날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1일차 회의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외교를 책임지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과 동시에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랐다. 최 부위원장이 ‘강경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대신 대미외교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워싱턴=김달중 기자, 정재영 특파원,정선형·권이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