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여성계는 “임신중지 기간 제한 없이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법 요구안을 내놨다.
12일 여성시민사회단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요구했다. 이들은 “22주 이후에도 임신중지를 모두 금지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게 헌재가 제출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며 “후기 임신중지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줄여나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2주 이후 임신중지를 규제해야 한다면 여성의 건강에 위해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22주 이후 시술을 결정한 당사자는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규제가 아닌 존중과 지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임신중지 여성에게는 어떠한 처벌도 없어야 한다”, “자연유산 유도약을 도입하고, 피임·임신중지에 보험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앞서 헌재는 낙태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을 경우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이 개정되기까지 시한을 둔다.
◆종교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
반면 천주교와 개신교 등 종교계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유감과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종교계는 의장 김희중 대주교 명의 입장문에서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한 여성과 남성이 용기를 내어 태아의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법과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 입법부와 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연합도 낙태죄 위현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한국교회연합은 “헌재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한 잘못된 판단이며, 이로 인한 생명 말살과 사회적 생명경시 풍조의 확산을 도외시한 지극히 무책임하고 편향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 아니라 임신 초기의 낙태를 허용한 것이라고 해서 인간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말살 행위가 조금이라도 미화되고 덮어질 순 없다”며 “앞으로 벌어질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생명 윤리의 파탄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개탄한다”고 덧붙였다.
◆“낙태 수술 거부할 권리” 현직 의사 청원 등장
한편 낙태 위헌 결정에 반대하며 ‘수술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는 청원이 게재됐다.
10년간 밤낮으로 산모를 진료하고 출산 현장을 지켜왔다는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나에게 낙태 수술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며 ‘수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를 주장했다. 그는 “아기집이 처음 형성되는 순간부터 출산의 순간까지를 산모들과 함께하며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를 매일 느낀다”며 “떤 환자는 비록 그 아기가 아픈 아기일지라도 어떻게든 살 수 있게 끝까지 도와달라고 애원한다”고 애틋한 사례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연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 사연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신비롭게 형성된 태아의 생명을 내 손으로 지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가 합법화되고 시술이 산부인과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면 아무리 큰 수익을 준다 해도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접을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오랜 시간 분만 현장을 누비며 즐겁고 보람되게 일했기에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겠지만 생명의 신비에 감동해 산부인과를 선택하고 싶은 후배들은 낙태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양심의 가책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낙태 합법화가 되더라도 원하지 않는 의사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료 거부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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