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자사고 둘러싼 갈등 절정…"정부가 직접 해법 제시해야"

입력 : 2019-07-10 06:00:00 수정 : 2019-07-09 22:25:23

인쇄 메일 url 공유 - +

무더기 재지정 취소 후폭풍 / 당초 ‘3∼4곳 머물 것’ 예측 뛰어넘어 / 교육부 ‘지정취소 동의’에 무게 실려 / 자사고 정책 사실상 폐지 수순으로 / 5년 주기 운영평가 때마다 혼란 극심 / “정부가 직접 해법 제시해야” 목소리 / 자사고 둘러싼 사회갈등 절정 치달아

“이제 교육부도 한숨 돌렸을 겁니다.”

9일 서울시교육청의 ‘2019년 자율형사립고 평가 결과’ 기자회견을 지켜본 교육당국 관계자가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칼을 뽑아줬으니, 교육부가 동의권을 행사하기 훨씬 수월해졌다”고 덧붙였다. 무슨 말일까.

서울교육청은 이날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평가 대상 13개교의 절반이 넘는 8곳에 대해 지정취소를 통보했다. 앞서 탈락 학교가 3∼4곳에 머물 것이라던 교육계 일각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서울시교육청 제공

조 교육감이 이번 임기 내에 자신이 공약한 ‘자사고 폐지’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선언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시에 자사고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달 전주 상산고가 0.39점 차이로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뒤 ‘부당평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상으론 자사고 축소를 찬성하는 여론이 다소 우세한 편이나, 교육청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아 최종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 교육부로서는 점점 커지는 ‘자사고 폐지 반대’ 목소리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때마침 나온 서울교육청의 강경한 입장은 교육부가 현 정부 대선 공약인 ‘자사고의 일반고화’를 추진할 동력이 될 수 있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이 청문 절차를 완료한 후 지정취소 동의를 요청하면, 법령에 의거한 절차에 따라 최대한 신속히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과 함께 “교육감의 취소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조 교육감을 앞세워 정책 관련 비판 여론을 서울교육청에 집중시키고, 교육부는 중립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브리핑실에서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자사고 13곳 중 8곳을 재지정 취소했다. 뉴시스

당초 교육부가 ‘부동의’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상산고처럼 미세한 점수차로 탈락한 학교에 대해선 교육부가 정무적 판단을 내려 부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도 “나머지 교육감의 결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2014년 박근혜정부와 같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임 정권의 적폐청산을 내걸고 출범한 현 정부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정치적 정당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은 5년 전 서울 자사고 14곳 중 8곳에 지정취소, 취소유예 결정을 내렸으나 당시 교육부의 부동의권 행사로 결정이 번복된 바 있다.

교육부가 ‘자사고의 일반고화’라는 국정과제의 격전지로 서울을 꼽은 만큼, 조 교육감의 결정에 부동의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진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경우 이명박정부 당시 급속히 자사고가 늘면서 고교서열화 현상이 나타났다”며 “그 결과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이 심화했고 교육시스템 전반을 왜곡시켰다는 게 지난 10년의 평가”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교육부로선 자사고로 인한 ‘일반고 생태계 황폐화’를 바로잡기 위해 이명박정부 시절 설립된 자사고 34곳 중 22곳이 몰려 있는 서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셈이다.

교육부의 ‘동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2002년 ‘고교 교육과정 다양화’를 목표로 출발했던 자사고 정책은 17년 만에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교육청은 일반고 전환이 확정되는 학교에 대해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하는 한편, 전환 과정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재정 지원을 통해 재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건학이념에 부합하는 교육활동을 지속해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자사고 논란이 5년마다 치러지는 운영성과 평가 때마다 극심하게 반복되는 만큼, 정부가 직접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사고 근거 규정과 교육청의 재지정평가, 교육부 동의 절차 등이 모두 시행령에 명시돼 있어 정권과 교육감 성향에 따라 정책이 일관성 없이 적용된다고 보고,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학교 체제 등을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일각의 ‘자사고 일괄 폐지’ 주장에는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유 부총리는 “일괄적인 전면 폐지는 (자사고의 일반고화) 공약과도 맞지 않는다”며 “다만 내년까지 모든 자사고 평가가 끝나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롤러코스터 탄 자사고 역사… 10년째 폐지·재지정 놓고 거센 논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고교의 자율성을 늘리고, 학생의 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이명박정부가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자사고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에서 출발한다.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제목의 교육 공약을 보면 자사고는 “국가의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사운영 등을 학교가 자유롭게 운영하고, 그 책무성을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의해 평가를 받게 하는 사립고교 운영모형”이라고 요약된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내용이 구체화한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백서인 ‘성공 그리고 나눔’에 따르면 이명박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다.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자사고 100개 등 300개의 다양화된 고교를 만들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후 교육부 장관)이 주도했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2008년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자사고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에도 자사고가 ‘귀족 학교’가 될 것이고, 고교 입시 과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밀어붙였고, 2010년 이후 전국에서 54개 학교가 자사고로 지정됐다. 이때 김대중정부 때 만든 자립형사립고도 자사고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번에 지정 취소된 전주 상산고를 비롯해 민족사관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해운대고, 현대청운고, 하나고 등이 자립형사립고였다.

 

박근혜정부는 자사고 유지와 일반고 육성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렇지만 2014년 자사고 폐지를 공동공약으로 내건 진보교육감들이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진보교육감들은 무더기로 자사고 지정 취소에 나섰고, 박근혜정부의 교육부는 교육감 재량권 남용 등을 이유로 교육청 결정을 직권취소하며 맞섰다. 자사고 취소 때 교육부 장관의 사전 동의를 거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도 이때 개정했다. 이 사태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간 법적 다툼 끝에 3년6개월 만인 지난해 7월 교육부 승소로 마무리됐다.

 

서울 서초구 세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뉴시스

자사고는 그러나 진보진영인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복잡한 고교 체제 단순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교육부는 2017년 7월 국정과제로 단계적 고교체제 개편을 발표한다. 그해 12월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의 고입을 동시에 실시(후기)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완료했다. 이 조치에 반발한 자사고들은 헌법소원을 냈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중복지원 금지는 유예하고, 동시 선발만 이뤄지게 됐다.

 

교육부는 지난 1월 시·도 교육청별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계획을 수립했다. 4월에 11개 시·도, 24개교의 운영성과평가보고서 제출이 마무리됐고, 교육청별로 평가를 거쳐 지난달부터 상산고를 시작으로 자사고 지정 평가 결과를 내놨고, 이날 서울시교육청에서 8곳 지정 취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교육부는 앞으로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 신청이 오면 관련 법령에 따라 8월 내로 평가의 내용·절차의 위법, 부당성, 평가적합성 등을 심의해 동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동수 기자, 세종=이천종 기자 d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블랙핑크 지수 '여신이 따로 없네'
  • 블랙핑크 지수 '여신이 따로 없네'
  • 김혜수 '눈부신 미모'
  • 유인영 '섹시하게'
  • 박보영 '인간 비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