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국제정치학자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7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으면 한·미 관계가 매우 어렵게 될 수도 있다”며 “만약 한국이 지소미아를 자연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한·미·일 트라이앵글의 상징적 의미에 큰 금이 간다고 미국은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무역 보복조치 맞대응으로 지소미아 파기 검토를 주장했는데 한·미 관계 등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며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다. 강 교수는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교수를 지낸 인물로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오영훈·김한정 의원실이 주최한 ‘한·일관계, 진단과 해법’ 특별강연에서 “(지소미아 자연 연장을 하지 않으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개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되고 일본에 있어서 유리한 결말은 아닐 것”이라며 “24일 지소미아의 자연 연장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미국 측이 3자회담 테이블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때 한국의 총리가 특사로 파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최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를 만났는데, 일본 측에서 특사가 파견된다면 그가 가장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를 북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가 내린 무역 보복 조치가 남·북·미 대화 국면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강 교수는 “최종적으로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북한”이라며 “북한이 어떻게 움직일까가 한국과 일본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아주 큰 결정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북·일 정상회담 성사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하면 문재인정부에 대한 일본의 접근은 당연히 바뀔 것”이라며 “남북이 지금보다 더 확고한 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미국과 북한이 어디까지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한·일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남과 북의 국가연합 내지는 통일이 일본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아베 총리에게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 교수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등은 ‘언젠간 겪을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은 부품·소재·장비 산업에서 일본만큼 발달했다고 하기 어렵다”며 “저변이 넓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버전업이 불가능하기에 이번 한·일 대립을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지금처럼 민간에서 일어나는 제품불매운동 등 일본 관련 보이콧의 확산을 경계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는 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한탄스러운 일”이라며 “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건 결코 한국과 일본을 위한 길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를 향해 “복수를 하면 반드시 복수가 기다린다. 소모적인 보복에는 승자가 없다. 일본도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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