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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학종…생(生)기부인가 ‘사(死)기부’인가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공공의 적' 학생부종합전형

입력 : 2019-08-25 17:00:00 수정 : 2019-08-25 17: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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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②

2019년은 이래저래 ‘학종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대입 수시 전형 중 하나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흥행으로 올 초 널리 회자되며 도마에 올랐다. ‘기승전 입시’인 한국 사회에서 ‘0.1%’ 상류층이 자녀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 돈으로 학종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드라마의 설정이 인기 비결이었다. 시험점수로 계량화하는 정량평가와 달리 정성평가인 학종 제도가 안고 있는 ‘금수저 전형’의 한계를 제대로 파고 든 것이다.

 

5월에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1심 판결을 계기로 ‘내신 농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학종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8월 들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외고 시절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둘러싼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 시절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는 흙수저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노랫말 중에서)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진 지긋지긋한 획일적 입시 위주 교육의 악몽을 벗어나려 도입한 학종(옛 입학사정관제)은 지금 신음하고 있다.

 

돈과 권력, 인맥이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 도대체 평가근거를 알 수 없다는 ‘깜깜이 전형’ 논란, 불투명한 입시로 ‘쓰앵님’(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빗댄 유행어)으로 상징되는 사교육만 키웠다는 비판 등 지금 학종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몇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연합 자료사진

지난 4월4일 경기 성남코리아디자인센터. 교육부가 마련한 ‘제1차 고교-대학 간 원탁토의’가 열렸다.

 

원탁회의는 ‘깜깜이’ 전형이라고 비판을 받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고교 교사들은 물론 대학 입학사정관과 교수, 교육관료, 취재진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한 교사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가 입시를 위한 도구가 되면 안 된다지만 지금 교사들 스스로도 ‘생(生)기부’가 아닌 ‘사(死)기부’라고 부를 정도”라고 일갈했다.

 

이후 6차까지 이어진 고교-대학 원탁토의에서도 부풀리거나 부실해 학생의 성장 과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는 생기부의 실태를 꼬집는 일선 교사의 발언은 쏟아졌다.

 

‘1차∼6차 고교-대학 간 원탁토의’에서 나온 발언 요약본에 따르면 한 교사는 “훌륭한 연기자를 만들어 입시를 치른다는 느낌”이라고 자괴감을 드러냈고, 다른 교사는 “200~300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평가·기록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교육 당국의 불필요하고 사소한 지침도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교육 현장에서 생기부가 얼마나 불신 받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다.

 

교사들의 지적대로 허위 기재하거나 부풀리고, 제대로 담지 않거나 같은 내용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하는 등 부실 기재로 감사에 걸린 사례는 수두룩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학생평가·학생부 신뢰도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한 관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1만1591개 초·중고교 중 1만392개(89.7%) 학교 대상으로 2015년도 이후 전반을 감사한 내용이다. 생기부 관련 2348건, 학생평가 관련 1703건이 적발됐다.

 

생기부와 관련해서는 △창의적 체험활동과 출결이 불일치하거나(782건·33%) △관리소홀·입력 착오·미기재(772건·33%)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재관리 부적정(424건·18%) △학생부 정정 절차 부적정(160건·7%) △봉사활동 및 시수 입력이 부적정하고(149건·6%) 등이었다.

 

학생평가를 두고는 △시험문제 출제단계 부적정(515건·30%)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운영 부적정(422건·25%) △수행평가 운영 부적정(35건·21%) △평가결과 처리 부적정(326건·19%) 등이었다. 

 

그렇지만 99% 이상이 지침 미숙지와 주의소홀 등으로 주의·경고 처분을 받았을 뿐 경징계(10건)를 포함해 징계처분을 받은 경우는 12건으로 0.09%에 그쳤다.

 

생기부가 고등학교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는 ‘복불복’ 의혹도 깜깜이 전형과 맞닿아 있다.

 

학종은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등급과 원점수 뿐만 아니라 해당 전공교과에 대한 진로선택과목과 전문교과를 이수했는지 여부가 평가요소로 참조될 수 있다. 대학들이 교과 정성평가 기준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심화과목과 전문과목이 디양하게 개설된 전국단위 자사고와 영재학교, 과학고, 외고, 국제고가 일반고에 비해 유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해당 교과목 담당교사가 기록하는 세부능력 특기사항(학업역량지수 평가지표로 활용)이나 1년간의 학교생활을 평가하는 담임이 기록하는 ‘종합평가’에 있어서 교사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같은 학생이라도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을 여지도 있다.

 

이러다보니 학생들은 학종의 성패를 좌우하는 생기부 기록의 공정성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전북대 행정대학원의 임충열씨의 석사 논문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분석>(2018)을 보면 고등학생의 학종 개선방안을 묻는 질문에 학생부 작성의 학교 및 교사의 차이가 입시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문항이 평균 4.06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학생부가 공정하게 작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3.93점)’, ‘대학은 학종 입시결과(평가방법)를 공개해야 한다(3.78점) 순이었다.

 

교육 당국도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내년부터 생기부를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학생의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우선 논란이 많았던 소논문(R&E) 기재금지가 가장 눈에 띈다. R&E 활동은 생기부 모든 항목에 기재할 수 없도록 했다. 

 

수상경력 제한도 큰 변화다. 지난해 발표한 일부개정안에서는 학기당 1개만 작성하도록 했는데 최종 확정안에는 수상경력을 모두 기재하되, 상급학교에 제공하는 수상경력 개수를 학기당 1개로 제한하는 것으로 일부 수정했다. 진로희망사항은 삭제된다. 봉사활동은 교사 관찰이 어려운 만큼, 교내‧외 봉사활동 특기사항은 미기재 하되 봉사활동 실적만 현행대로 기재한다. 방과후학교 활동도 기재할 수 없다. 기존 대입자료로 제공되던 자격증‧인증 취득상황은 대입자료로 제공되지 않는다. 

 

‘셀프 학생부’ 기재 행위와 학부모들의 기재 간섭 행위, 허위 사실 기재 행위 등을 막는 장치도 마련했다. 단위학교 차원에서는 학생부 점검 전담반을 구성해 교차 점검 등 자체점검을 실시하며, 학교장은 생기부 자체점검 계획을 수립해 학사일정에 반영해 운영한다. 교육청의 경우 매년 소속 학교에 대한 생기부 기재‧관리 실태점검 계획을 수립하고 위반사례 적발 학교 및 생기부 관련 민원이 빈번한 학교를 대상으로 집중 컨설팅을 지원한다. 교육부는 학종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 입시제도 평가 지표에 학종 공정성 관련 배점도 확대하고 있다.

 

대학 역시 학종 전형의 투명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는 2019년 5월21일 ‘2020 입학전형 설명회 동영상’을 입학웹진 아로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입학전형 주요사항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의 이해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됐다.

 

연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 등도 학종 평가방식을 점점 더 세세하게 공개하는 추세다. 입학설명회에서 평가 자료를 보여주거나 합격자의 자기소개서 등을 공개하기도 한다.

 

건국대와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6개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올초 학종에 대한 수험생들의 궁금증을 모아 학생·학부모·교사 등을 위한 안내서 ‘학생부종합전형 101가지 이야기’를 발간했다. 이 소책자는 연구에 참여한 대학 홈페이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상담센터 대입정보포털 등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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