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수저·깜깜이’ 전형으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커지면 뒷간에서 남몰래 웃는 곳이 있다. 사교육업계다. ‘5년지대계’의 변화무쌍한 대한민국 교육 정책 속에서 살아남으며 키운 내공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입시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 가장 빨리 눕고 한 박자 먼저 일어났다.
예비고사·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논술과 같은 지필시험의 변화든, 학종과 같은 컨설팅의 영역이든 카멜레온처럼 변신했고, 적응에 성공했다. 학종은 사교육에 큰 기회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외고 시절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둘러싸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 시절의 씁쓸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획일적인 입시 방식인 객관식 찍기 시험으로 줄 세우지 않고 학생의 가능성을 보고 뽑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펙 경쟁을 낳았다. 사교육계의 표적이 됐고, 입학사정관제 토플, 토익·텝스 등 공인어학자격증, AP(해외대학 학점선이수제) 준비 등이 대박을 쳤다. 봉사활동 스펙 경쟁에 붐이 일면서 이를 컨설팅해주는 학원들도 덩달아 인기였다.
교육당국은 이에 스펙 경쟁에 철퇴를 내렸고, 입학사정관전형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름을 바꿨다.
학생부 간소화 대책도 함께 내놨다. 학생부에는 교내 활동만 기재하고 외부 실적은 적지 못하게 했다.
토플 등 공인어학 성적, AP 등 학교 외 기관의 시험 결과를 기재하면 서류점수를 0점 처리하거나 불합격시킨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학교간 격차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문제를 양산했다.
과학고·영재학교 등은 교내에 과학 실험과 실습 기자재가 갖춰졌고 석·박사급 교사가 많고,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이 많아 R&E(Research&Education) 활동이 활발했다. 활동의 결과물로 소논문을 작성해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기록했다. 이런 소논문이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의 대입 스펙으로 소문나자 자사고·일반고에서도 소논문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여건이 다른 일반고 학생은 소논문 작성이 쉽지 않았고, 사교육에 의존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교육당국은 이에 소논문의 대입 반영도 금지했다.
그렇다고 끝이 났을까.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교내 활동에 초점을 맞췄고, 학생부 기록이 가능한 교내 경시대회 수상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내 경시대회 대비 학원이나 수행평가 준비 컨설턴트가 등장하고, 학생부 기록을 설계해주는 사교육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2022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학생부에 교내 상 수상 내역을 한 학기당 한 개씩으로 제한했다.
입시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것도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아파트 ‘똘똘한 한 채’처럼 가장 입시에 유리한 수상에 초점을 맞춘 사교육이 등장하고, 줄어든 자기소개서 글자수에 맞는 맞춤형 컨설팅이 생길 것으로 본다.
대학도 사교육을 부추기는 주범이다.
학종에서 ‘갑’은 서울 주요 대학이고, 학생과 학부모는 철저히 ‘을’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학생은 줄고 있지만 가고 싶은 서울 주요 대학에 들어갈 학생은 여전히 넘쳐 나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쏟아내고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일단 대학이 내놓는 학종 정보가 피상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를테면 학종의 공식처럼 돼버린 ‘성적의 꾸준한 우상향’이 유리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보면 ‘하향해도 이유가 있다면 관계없다’는 원칙론을 내놓는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은 수험생 입장에서는 쓸모없다. 학종이 원하는 인재를 묻는 질문에도 ‘적극적’ ‘성실’ ‘자기 주도적’ 등의 두루뭉술한 용어가 사용된다. 무엇보다 서울 주요 대학들은 한결같이 고등학교를 등급화해 평가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를 믿는 순진한 일반고 학생과 학부모는 드물다.
결국 초조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입학설명회, 진로·진학 상담회를 돌며 정보전에 나서고, 사교육 업계는 이들의 불안 심리를 활용해 지갑을 열게 하는 신공을 발휘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논술전형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논술 시험 문항을 보면 사교육의 도움없이 준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이 실시하는 대입 논·구술고사는 대학들은 고교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반고 정규 교과과정으로 소화하기 힘들다. 결국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수험생의 학습 부담과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2012년부터 주요 대학들의 논‧구술고사들이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선 문제를 출제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 여부를 분석해 왔다.
사걱세가 2019년 8월27일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등 3개 대학에서 시행한 2019학년도 대입 논·구술고사 수학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서울대 19%, 연세대 28.6%의 문제가 고교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미준수해 선행교육 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됐다. 고려대는 위반 사항이 없었지만 현재 고등학교의 과목 분리형 교육과정으로는 대비할 수 없어 관련 사교육 부담이 생길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됐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거미줄처럼 얽힌 대입의 복잡한 해법으로 ‘공론화’ 카드를 꺼냈다. 집단 지성을 활용해 쾌도난마처럼 풀겠다는 기대를 담았다.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2018년 4월30일부터 8월3일까지 약 3개월간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시민참여형 조사 방식으로 공론화를 추진했다. 시민 대표로 참여한 490명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시민참여단은 2018년 7월11일부터 2018년 7월29일까지 3주간의 숙의과정을 거쳤다.
공론화위는 기대와 달리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지 못했다. 관건인 학생 선발 비율과 관련해 공론조사에서 학생부위주전형 내에서 학종 비율을 현행 수준에서 확대하자는 의견과 축소하자는 의견이 서로 엇비슷했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봉합됐다.
공론화위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 학종 찬반론자의 견해차만 확인한 꼴이 됐다.
학종 반대론자는 학종이 ‘금수저 전형’, ‘학부모 전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녀의 학생부 기록에 부모의 경제적인 부나 권력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형이라며 공박했다. 미로 게임처럼 복잡한 학종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고액의 컨설팅을 받거나, 부모가 수많은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닐 수 있는 여건이 돼야한다는 논거를 댔다.
이에 학종 옹호론자는 세계 최장의 ‘입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행복 추구권을 외면한 채 다시 획일적 입시 체제로 돌아가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과정을 평가하는 학종으로 그나마 고교 교육 정상화에 숨통이 트였고, 학교 활동의 다양성도 살아나는데 싹을 꺾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는 게 주된 논거였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①씁쓸한 방정식…‘학종=금수저 전형?’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24502638
②‘깜깜이’ 학종…생(生)기부인가 ‘사(死)기부’인가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24504536
③ ‘등골 브레이커’ 학종… 입시코디들만 배불린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3150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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