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다가오면서 주요 극장과 예술단체의 내년 공연 일정표도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다. 클래식계의 ‘신성(新星)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세계 정상의 ‘마린스키 발레단’도 내한한다. 연극·뮤지컬 팬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워호스’ ‘렌트’ 등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2020년에 공연 애호가들이 미리 관람 계획을 세워놓을 만한 무대를 소개한다.
◆쿠렌치스 첫 내한
많은 음악가·단체 연주일정이 잡힌 내년 클래식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대는 단연 4월로 예정된 지휘자 쿠렌치스 내한 공연이다. 1972년 그리스 아테네 출생인 쿠렌치스는 현재 클래식 세계의 단연 ‘문제적 인물’이다. 러시아 유학 후 변방 작은 도시 페름에서 직접 창단한 ‘무지카 에테르나’를 이끌며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등의 파격적 곡 해석이 격렬한 찬반 논쟁 속에서도 객석의 큰 환호를 받고 있다. “내게 10년의 시간을 준다면 클래식 음악을 살려내겠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야심 찬 젊은 마에스트로와 그의 악단의 첫 내한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과 7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138년 역사의 미국 보스턴 심포니도 수장 안드리스 넬손스와 함께 2월 최초로 내한한다. 전통과 관록의 보스턴 사운드를 체험할 값진 기회다. 이틀에 걸쳐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 등을 들려준다. 14년 만에 서울을 찾는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도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최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국내 투어를 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내년 11월엔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다. 레퍼토리는 미정이나 협연에는 제1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가 나선다. 또 10월에는 사이먼 래틀 경의 런던심포니가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하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투간 소키예프가 이끄는 파리오케스트라도 11월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다.
독주로는 올해 내한 공연에서 호평받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9월에는 베토벤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깊이 있는 무대를 준비 중이다. 또 지성파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알렉상드르 타로가 6월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독특한 해석으로 깊이 있고 정갈하게 연주하는 타로는 이번 리사이틀에선 특기인 드뷔시, 라벨, 사티 등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과 함께 베토벤 소나타를 들려준다. 국내 연주자는 5월에는 손열음이, 7월에는 조성진이, 10월에는 임동혁이 피아노 리사이틀을 펼친다.

◆렌트와 워 호스
‘여명의 눈동자’ ‘42번가’ ‘킹키부츠’ ‘호프’ ‘캣츠’ ‘맘마미아’ ‘맨오브라만차’ 등의 인기 작품이 줄 선 내년 뮤지컬 극장가에선 9년 만에 무대가 다시 열리는 ‘렌트’를 눈여겨볼 만하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가난하지만 젊은 예술인의 낭만과 열정, 사랑과 우정이 살아있던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를 배경으로 되살렸다. 199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앞두고 요절한 천재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이다. 당시 세기말적 증후군으로 거론됐던 에이즈와 동성애, 마약 등 파격적 소재를 다뤘다.

연극으로는 영국 국립극단(NT) ‘워 호스’가 7월 국내 초연된다.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영국 한 농장에서 태어난 군마(軍馬) ‘조이’와 그의 첫 주인이었던 소년 ‘앨버트’의 파란만장한 사연이 펼쳐진다. 동명 소설·영화도 유명한데 연극으로선 NT에서 2007년 초연했다. 국내에도 여러 차례 실황중계된 작품으로서 표를 구하기 힘들었던 인기 공연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실물 크기의 군마 인형이 무대를 누비는 장면이 유명하다.

◆마린스키의 ‘젊은이와 죽음’
세계 최정상으로 손꼽히는 마린스키발레단은 내년 10월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안무가 롤랑 프티의 걸작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과 러시아 황실발레의 전통이 살아있는 ‘파키타’를 공연한다. 롤랑 프티는 20세기 프랑스 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 파리오페라발레학교와 국립파리오페라발레단 출신으로서 무용수들의 감정과 연기에 집중하는 드라마 발레 전성시대를 열었다. 천재 안무가가 22세 때 역시 천재였던 시인·소설가 장 콕토(대본)와 함께 만든 ‘젊은이와 죽음’은 파리 시내 한 골방에서 청년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안무가의 천재성이 곳곳에서 번득이는데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루돌프 누레예프 등 당대 최고 발레리노들의 춤과 연기가 전설로 남아있다. 테일러 핵퍼드 감독의 영화 ‘백야(1986)’ 도입부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세계적인 발레리나 ‘니콜라이(바리시니코프 분)’가 추는 춤으로도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올해 ‘백조의 호수’에 이어 내년에도 영국 안무가 매슈 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9월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레드슈즈’는 마이클 파월 감독이 연출한 고전 영화 ‘분홍신’을 매슈 본이 무용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국립발레단도 3월 ‘백조의 호수’와 ‘호이 랑’, 4월 ‘안나 카레니나’, 6월 ‘해적’, 11월 ‘로미오와 줄리엣’, 12월 ‘호두까기 인형’으로 이어지는 내년 공연 일정을 발표했다. 특히 ‘해적’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주목된다. 영국 낭만 시인 바이런의 극시를 바탕으로 한 ‘해적’은 마리우스 프티파 버전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송정빈이 재안무한 새로운 버전으로 선보인다. 또 현대발레 거장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국립발레단 공연은 7년 만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랜만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전막을 4월 무대에 올린 이후 6월 ‘돈키호테’, 7월 ‘오네긴’, 12월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오페라단은 4월초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를 국내 초연한다. 6월에는 최근 ‘호프만의 이야기’ 연출로 호평받은 뱅상 부사르의 ‘마농’을 재연하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도 선보인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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