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맥스 기종의 잇단 추락 참사로 창사 103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한 미국 항공우주기업 보잉이 결국 데니스 뮬런버그 최고경영자(CEO)를 경질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보잉은 이날 성명을 내고 뮬런버그 CEO의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보잉은 “규제당국과 고객, 기타 모든 이해 당사자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사회가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뮬런버그의 뒤는 데이브 캘훈 보잉 이사회 의장이 잇게 되며, 캘훈이 내년 1월13일 CEO로 공식 취임할 때까지는 그레그 스미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임시 대행을 맡는다.
보잉은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737 맥스 비행기의 연쇄 추락 사고로 1917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 3월10일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두 번째 추락 사고 이후 737 맥스 기종은 전 세계에서 운항이 중단됐다. 이후 보잉 주가가 22% 폭락하면서 시장가치는 520억달러(약 60조5000억원)가량 하락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항공산업 컨설팅업체 틸그룹의 리처드 아불라피아는 뮬런버그가 “규제당국, 의회, 고객, 납품업체 및 일반 대중과의 소통에서 나쁜 본보기와도 같았다”고 경질 이유를 분석했다. 맥스 기종 운항 재승인 가능성에 대한 그의 낙관적 예측은 관계사들을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연방항공청(FAA)에 대한 압박으로 비쳐졌으며, 사고 희생자 유족에 대한 서투르고 불충분한 사과는 보잉의 명성을 깎아먹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뮬런버그는 연방 상·하원 청문회에서의 사퇴 압박, 지난주 보잉의 맥스 기종 생산 중단 결정 이후에도 자리를 지켜온 만큼 이번 이사회의 결정은 전격적인 일로 평가된다. NYT는 이와 관련해 “맥스 생산 중단 논의를 위해 지난 15일 시카고에서 열린 이사회에서만 해도 뮬런버그의 거취는 언급되지 않았다”며 “22일 소집된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CEO 교체 결론이 났다”고 2명의 핵심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보잉의 유인캡슐 ‘스타라이너’의 시험비행 실패가 결정타가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일 우주로 발사된 스타라이너는 타이머 문제로 정상 궤도를 벗어났으며 국제우주정거장(ISS) 도킹에도 실패했다. 이는 힘겨운 한 해를 보낸 보잉 직원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렸는데, 정작 뮬런버그는 시험발사의 긍정적 측면만 부각해 회사의 위기에 관해 또 한 차례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뮬런버그는 위기 대처 실패로 34년간 보잉에서 써온 ‘인턴 신화’를 불명예스럽게 마감하게 됐다. 1985년 인턴 엔지니어로 입사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그는 2015년 보잉 최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 WP와 CBS는 그가 보너스와 주식을 비롯해 최소 3900만달러(약 454억원), 최대 5850만달러(약 681억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뮬런버그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이날 보잉 주가는 약 3% 상승한 337달러로 뛰었다. 한 추락사고 희생자 유족은 “그의 퇴진은 보잉을 안전과 혁신에 초점을 맞출 회사로 되돌리는 좋은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뮬런버그는 모든 걸 잘하고 있다고 했던 캘훈 의장이 새 CEO가 됐다니 맥이 빠진다”며 “지금 보잉에 필요한 것은 대청소”라고 주장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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