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했던 대학생활이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잠시 쉬기로 했어요.”
지방의 한 사립대에 지난해 입학한 A(20)씨는 한 학기 만에 휴학을 선택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엘리베이터에 학생이 너무 많아 아무리 기다려도 탈 수 없고, 출입문도 무거워 혼자서 열기 어렵더라”며 “그러다 보니 엄마나 도우미가 늘 같이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대학 정보공시에 따르면 전문대학이나 대학, 대학원 등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 장애학생의 수는 9628명이다. 전체 재학생 242만3669명의 0.4%에 불과하다. 20대 전체인구 대비 장애인 비율이 3.7%인 것을 감안해도 대학진학률은 낮은 수준이다. A씨처럼 어려움을 딛고 학업을 시작하더라도 교육환경이나 편의시설, 지원시스템 등의 부족으로 중도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애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캠퍼스 10곳 중 4곳은 장애학생 복지지원 ‘개선요망’ 등급
31일 서울교육대 산학협력단의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에 대한 요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장애인대학생 23명과 장애학생의 가족 6명, 장애학생지원센터 실무자와 도우미 등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센터 운영의 전문성이나, 학사운영, 맞춤형 진로지원 시스템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육부 산하 국립특수교육원이 장애학생의 고등교육 현황 파악을 위해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 평가’를 보면 2017년 기준 ‘최우수’·‘우수’ 등급을 받은 캠퍼스는 각각 7.8%와 16.1%였고, ‘보통’(38.6%)과 ‘개선요망’(37.5%) 평가를 받은 캠퍼스가 다수를 차지했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학생 B(23)씨는 “장애학생 우선수강신청 기간이 있는데, 그 시기에 수강신청을 하려고 하면 강의계획서도 없고 담당교수님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장애학생이 수강신청하는 기간에도 최소한 갖춰져야 하는 정보들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도서관에 필요한 (점자) 교재 제작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3월 개강한 이후부터 신청을 받고, 교재 제작 여부를 중간고사 이후에 알려준다”며 “지원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부는 장애인대학생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학습지원을 강화하고자 법적 토대를 만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각 대학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등에 근거해 재학 장애학생이 10명 이상일 경우 개개인 장애특성을 고려해 교육·생활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특별지원위원회’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2018년 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 운영 내실화와 도우미 지원 내실화 등의 내용이 담긴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현장에서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이런 제도들이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위원회와 센터가 설치돼 있더라도 센터의 조직과 담당직원의 자격, 장애학생당 담당 직원 수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이렇다보니 지원센터들은 만성적으로 전담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2018년 기준 장애학생지원 행정인력 구성현황을 보면 전담직원은 22.5%에 그쳤다.
◆“예산확대·눈높이 맞춘 정책으로 실효성 높여야”
일부 장애학생들은 학업을 위해 속기사나 점역사, 수화통역사 등 전문성을 갖춘 도우미를 필요로 하지만 수요 대비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면접에 참여한 한 청각장애학생은 “학교 직원이 속기사는 본인 책임이 아니라며 조교에게 문의하라고 했고, 조교에게 갔더니 이는 학과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2학년 2학기 때까지 지원받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도 “속기사를 요청했는데, 학교 측에서 속기사 지원은 어렵고 도우미 학생만 3과목 정도 연결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장애대학생 도우미는 2725명으로 전년도(3167명)에 비해 14.0% 정도 줄어들었다. 이 중 대학생이나 일반인 등 비전문가로 구성된 일반도우미가 2568명으로 대부분(94.2%)을 차지한다. 반면 자격증을 지닌 전문 도우미나 원격교육 전문 도우미는 5.8%로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장애대학생 도우미 지원 사업 예산 규모는 2014년 48억9300만원이었으나 2015년 20억7800만원으로 급격하게 삭감된 이후 지난해까지 줄곧 20억원대 수준에 머물렀다. 2015년부터 대학생 일반도우미에 대한 지원이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지급으로 대체된 것이 예산 삭감에 영향을 미쳤다. 전문도우미는 현재 국고보조금 80%와 대학 부담금 20%로 운영되는데, 대학 측에서는 재정부담 등으로 인해 필요로 하는 모든 학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문 도우미를 채용하고 계약할 때 현장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5년간 동결됐던 지원 한도액 단가를 156만원에서 올해 186만2000원으로 인상했다”며 “대학별 장애학생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사실 재정부담으로 보기엔 어렵고, 대학 관계자들 의지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개별 장애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체계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교육부가 관련 예산을 통해 지원체계를 위한 근간을 충분히 확보한 후, 대학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 평가에 반영해야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학내 구성원들의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내실있는 장애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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