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후 냉각된 한일관계가 최근 국내서 벌어진 마스크 지원 논란으로 한층 악화하고 있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미국·일본, 한국전 참전국 등에 마스크를 수출·지원하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마스크 지원 반대 청원이 다수 올라왔다.
일본 마스크 지원 보도로 인한 논란은 당국이 진화에 나서 일단락됐지만 이러한 소식이 일본 언론을 통해 마크스를 지원하기 힘든 이유 등이 빠진 채 전해지면서 반한(反韓) 감정만 키웠다. 이러한 가운데 대만이 일본에 마스크 200만장을 지원하면서 반한 감정에 불을 지폈다.
◆“고마운 대만”
한국에서 일본 마스크 지원 논란이 중이었던 21일 공교롭게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마스크 200만장이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시사통신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이잉원 총통은 의료 현장 등에서 사용되는 마스크를 보내기에 앞선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만에서 지원한) 마스크가 코로나19와 싸우는 일본에 조금이라도 도움 됐으면(좋겠다). 함께 (코로나19에 대응해) 싸우면 큰 힘을 낼 수 있다. 세상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는 일본어 메시지를 남겼다.
또 차이잉원 총통의 마스크를 담은 수화물 상자에는 ‘대만 일본 우호’라는 현수막이 내 걸렸는데 이를 본 일본 시민들은 “고마운 대만”이라며 감사 인사의 뜻을 전했다.
마스크 품귀 사태와 아베 총리가 전 국민에게 배포하려던 이른바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가 품질 논란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터라 차이잉원 총통이 보낸 마스크에 많은 감사 인사가 뒤따랐다.
◆아쉬워하면서도 “달라고 안했다”
차이잉원 총통의 마스크는 다음날부터 의료현장, 취약계층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곳에 배포됐다.
반면 같은 날 한국에서는 일본 마스크 지원 논란을 진화하고자 외교부에 이어 청와대까지 “일본에 대한 보건용 마스크를 지원하는 방안은 처음부터 검토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상대국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지원 의사를 밝힌다는 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떠들썩했던 마스크 지원 논란이 일단락되자 일본 언론은 다음날인 23일 관련 소식을 현지에 전하면서 “한국과 갈등의 골이 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JBpress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이 마스크 문제로 다시 폭발했다“며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자 한국 시민들은 일본에 대한 마스크 지원에 반대하는 국민 청원까지 게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청원 중 마스크에 ‘독도’라는 이름을 새겨 일본에 보내자는 글을 소개하며 이 청원에 2만 6000명 넘는 이들의 동의했다고도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마스크 5부제’의 정착으로 마스크 구매를 위한 긴 줄이 사라지는 등 마스크의 재고에 여유가 있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의 방역 지원을 위해 마스크를 기부하거나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지만 일본의 경우 요청도 안 한 마스크 지원은 물론 수출에도 강한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매체는 “한국에 진출한 유니클로나 토요타 자동차 등의 일본 기업들은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할 당시 어린이 복지 단체와 대구시 등에 코로나로 고통받는 곳에 써달라며 물품과 성금을 전한 바 있다”며 “그러나 한국은 일본 기업의 기부를 ‘불매운동에 타격받은 이미지 쇄신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세계적 재앙을 초래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해 나가기에는 한일간 갈등의 골이 너무나 깊어졌다”고 우려를 표했다.
관련 기사에는 24일 오전까지 수백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에는 언급하기 힘든 악성 댓글을 비롯해 ‘요청한 적 없다’ 등의 부정적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아쉽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다.
◆한국과 대만 차이, 한국의 마스크 사정 등 전하지 않은 건 아쉬워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로 꼽힌다.
24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총 1만 708명으로 집계됐다. 1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틀째 한자릿수를 나타내고 일주일째 20명 이하를 기록한 가운데 사망자는 39일 만에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에선 23일 하루 동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30여명 나오면서 누적 확진자 수가 1만 3000명을 넘어섰다.
대만은 24일 9시 기준 전날 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총 427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는 6명이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보면 대만의 코로나19는 한국 일본보다 안정된 모습이다. 차이잉원 총통이 마스크 200만장을 일본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안정세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마스크 여유가 조금 생겨 오는 27일부터 주당 3장의 마스크 구매가 가능해졌지만 마스크 5부제 시행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5월 개학설이 나오는 가운데 학부모들은 부족한 어린이·청소년용 마스크 구매에 적지 않게 고민하는 실정이다. 청원글과 동의자가 남들 댓글에서도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
일본보다 마스크 사정이 여유로운 건 사실이지만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했음에도 이러한 실정은 전하지 않고 청원만 집어내 반일감정으로만 표현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 시민들이 한국 언론 보도를 찾아가며 전후 사정을 이해하고자 하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에 근접한 내용전달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과는 지난해 보복성 수출조치 등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인도적인 부분은 따로 고려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투트랙 기조다. 검토해볼 필요가 있으면 그때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보건용 마스크의 해외 지원 의견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 응답이 67.5%(매우 찬성 27.1%, 찬성하는 편 40.4%) ‘반대’ 응답 25.2%(매우 반대 10.5%, 반대하는 편 14.7%) 보다 높게 나타났다.
일부에서 일본에 대한 마스크 지원 반대 청원을 비롯해 설문에서도 반대한다는 의견은 있었지만 각종 외교 갈등과 인도적 지원을 분리해서 사고하며 지원에 긍정을 표한 시민들이 더 많았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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