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여성들이 먼저 한남충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의 한 주점에서 남성 일행과 여성 일행이 서로 폭행한 ‘이수역 폭행사건’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남녀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8년 발생 직후부터 양측이 서로 여혐(여성혐오)범죄, 남혐(남성혐오)범죄를 주장하며 온라인상 ‘남녀갈등 이슈’로 번졌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배성중 부장판사는 4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여성 A씨와 남성 B씨에게 각 벌금 200만원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금액을 구형한 검찰 측 판단을 법원이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배 부장판사는 여성 A씨의 모욕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는 “이 사건은 A씨의 모욕적인 언동으로 유발돼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일부 무죄를 고려해도 약식명령상 벌금형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판결했다. A씨의 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남성 B씨가 입은 상해는 스스로 손을 뿌리치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무죄로 봤다.
남성 B씨도 상해혐의가 인정됐다. 배 부장판사는 “부당한 공격에 대한 방어라기보다는 싸우다가 도주하려는 목적으로 유형력을 행사했다”며 “자신이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며 A씨가 넘어져 다칠 수 있음을 인식하고도 미필적 의사로 이를 감수했다. A씨가 입은 상해 정도에 비춰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두 사람의 언쟁 과정에서 B씨의 발언들도 모욕 혐의가 인정됐다.
판결 후 여성 A씨는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엇갈린 주장에 ‘남녀갈등’까지 번진 ‘이수역 사건’
검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지난 2018년 11월 13일 오전 4시쯤 서울 이수역 인근 한 주점에서 서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은 A씨 측이 사건 직후 청와대 청원게시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글과 피해 사진을 올려 관심을 받았다. 그는 “남성 5명이 자신들을 향해 ‘메갈X들’이라고 욕설했다”라며 ‘여성혐오 범죄’를 주장했고 해당 청원은 이틀 만에 30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B씨 측은 경찰 조사에서 A씨 측이 주점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진술했다. 자신도 여성에게 손목을 폭행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건이 논란이 되자 유튜브에는 당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1분 4초짜리 영상이 공개됐는데 영상에서 여성들은 “나 같으면 XX(성기) 달고 밖에 못 다니겠다. 너네 성기 6.9㎝. 너네 여자 못 만나봤지?”라고 남성 일행을 먼저 조롱하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에는 주점 관계자가 여성들을 말리는 장면이 담겼는데 이 관계자도 경찰 조사에서 “여성들이 시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옆 테이블에 앉았던 남녀 일행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다른 테이블에서 술 마시던 여성들이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발언) 커플’ ‘흉자련(남성 편에 선 여자)’ 같은 단어를 쓰면서 비아냥거렸다”며 “남자분들이 ‘왜 가만히 계시는 분들(저희 커플)에게 그러냐며 거들어주셨다”는 글을 올렸다.
검찰은 당시 폐쇄회로(CC)TV와 휴대전화 영상,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양측이 서로 모욕하고 폭행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조사 결과 A씨 일행은 먼저 다른 테이블에 있던 남녀를 향해 “한남충이 돈이 없어 싸구려 맥주집에서 여자친구 술을 먹인다” 등 발언을 했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B씨 등 남성 5명이 “저런 말 듣고 참는 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남녀 일행을 옹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A씨 일행은 “한남충끼리 편먹었다” 등의 말을 하며 B씨 측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간 폭행까지 번졌다. A씨 일행은 남성의 성기를 조롱하는 모욕성 발언을 했고 B씨 일행 역시 ‘메갈은 처음 봤다' 등 모욕성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A씨와 B씨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폭행, 상해, 모욕 등 혐의로 각 벌금 200만원과 1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양측이 이에 불복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검찰은 다시 A씨와 B씨에게 각 벌금 200만원과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다. 나머지 일행에 대해서는 가담 정도와 상호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불기소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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