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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이스라엘 ‘적과의 동침’에… 중동 역학구도 요동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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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29 20:00:00 수정 : 2020-08-29 17: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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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상화 의미·전망
유엔·서방 “역사적 돌파구” 일단 환영
美 트럼프 ‘협상의 달인’ 이미지 높여
팔레스타인 서안 합병 문제엔 ‘3국3색’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지 사흘 만인 지난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해안도시 네타냐의 도로에 양국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네타냐=AFP연합뉴스
지난 6월 히브리어로 발행되는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에 전례 없는 기고문이 실렸다. 적성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유세프 알오타이바 미국주재 대사가 글을 보내온 것이었다. 그는 ‘합병이냐 관계 정상화냐’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를 합병하면 아랍세계 및 UAE와의 안보·경제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스라엘의 기대는 확실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끝나버릴 것”이라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7월부터 본격 추진하겠다고 예고해온 서안 병합 시도에 대한 경고장임과 동시에 양국 간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친 글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알오타이바 대사의 글이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작성됐는지는 두 달 만에 드러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UAE와 이스라엘이 ‘역사적 평화협정’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중재자 역할을 한 미국을 비롯한 세 나라는 공동성명에서 “UAE와 이스라엘 대표단이 수주 안에 만나 투자, 관광, 직항로 개설, 안보, 통신, 기술, 에너지, 보건, 문화, 환경, 상호 대사관 설치 등에 관한 양자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9·11, 이라크전 이후 가까워진 두 나라

공동성명은 UAE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역사적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유엔과 서방 각국도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일단 환영했다.

아랍 국가들이 그간 이스라엘을 ‘점령군’ 취급하며 네 차례 전쟁까지 치른 점을 고려하면 역사적 합의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1948년 건국 이후 이스라엘이 수교한 아랍 국가는 이집트(1979년)와 요르단(1994년)뿐이었다. 걸프 지역 아랍 국가 중에서는 지금껏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은 나라가 단 한 곳도 없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이번 합의가 2001년 9·11테러 이후 약 20년 동안 지속된 양국 간 은밀한 유대의 결과물이라고 보도했다. 9·11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테러범들이 UAE 두바이를 자금 이동의 거점으로 삼았는데, 이때 UAE가 이스라엘 도움을 받아 사이버 보안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중동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적의 손을 붙잡은 셈이다. 영국 컨설팅업체 코너스톤 글로벌 어소시에이츠 설립자이자 중동 전문 컨설턴트인 가넴 누세이베는 “9·11은 UAE에 최고의 기술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켰고, 이는 이스라엘에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후 양국 간에는 공항 보안, 담수화, 부동산, 관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관계가 형성됐다. 9·11 이후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의 발호 과정에서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UAE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수니파 왕정국가들도 이스라엘과 밀착해 왔다는 진단이다. 미국외교협회의 스티븐 쿡 중동 전문가는 블룸버그통신에 “공동성명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외국 민병대 네트워크 등 역내 위협에 대한 안보협력 강화가 이번 합의의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이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지난 13일(현지시간) UAE 국기 모양의 조명이 밝혀진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 전면의 모습을 시민들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특히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수장 요시 코헨이 이들 아랍 국가의 통치자나 정보기관장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비밀리에 관계 개선의 기반을 닦아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모사드가 수집한 이란 관련 고급 정보가 협력의 주요 매개가 됐다. 양측은 안보·정보 협력에서부터 최신 사이버 무기 구입, 정치·스포츠·경제 교류에 이르기까지 점점 확대됐다고 FP는 전했다.

◆3국 정치 지도자들의 속내는

이번 합의는 미국, UAE,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내면서 ‘협상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게 됐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이던 미국 언론들도 “중대한 외교적 합의”(NYT), “커다란 업적”(워싱턴포스트)이라고 이번 합의를 높이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FP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평화협정을 일궈낸 이스라엘이 ‘가장 큰 승리자’라고 봤다. 부패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확산과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UAE는 이번 합의로 ‘역내 실세’로서의 입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UAE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해 가톨릭 수장으로서는 최초의 ‘이슬람 발상지’ 아라비아반도 방문을 성사시켰고, 이를 계기로 아부다비에 기독교·이슬람교뿐 아니라 유대교 예배시설까지 갖춘 복합 종교시설 ‘아브라함 가족의 집’을 짓고 있다.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동시에 향후 이스라엘 사업체·금융기관까지 합류한 글로벌 상업 중심지로서의 도약을 내다본 결정이라고 외신들은 짚었다. 이번 국교 정상화 합의 역시 세 종교 공동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을 딴 ‘에이브러햄 합의’로 명명됐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제

◆남은 불씨는 팔레스타인 서안 문제

UAE의 뒤를 따르는 국가가 속속 등장한다면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란의 위협을 중대하게 여기는 바레인과 ‘중동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가진 오만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가능성을 점친다. 두 나라는 이번 합의를 공개 지지했다. 특히 오만의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전 술탄은 2018년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신중한 태도다. 사우디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왕자는 지난 19일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아랍 평화 구상’ 고수 방침을 분명히 했다. 사우디가 2002년 선언한 아랍 평화 구상은 이스라엘이 서안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이 국가를 수립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승리를 통해 점령한 뒤 다수의 유대인 정착촌이 형성된 서안 문제가 최대 관건이다.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 중 하나인 파타의 무장대원들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의 아스카르 난민캠프에서 총을 들고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 합의 규탄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아스카르=EPA연합뉴스

UAE는 이번 합의로 “이스라엘의 서안 합병이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이 성공적으로 제거됐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합의 발표 당시 서안 합병 관련 표현이 미국은 ‘중단’(suspend), 이스라엘은 ‘연기’(delay), UAE는 ‘종식’(end) 등으로 제각각이어서 향후 평화협정 문안 세부 조율 과정에서 충돌할 불씨가 남았다는 평가다. 네타냐후 총리는 특히 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합병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UAE가 “불명예스러운 결정”으로 “배신을 했다”고 규탄했다. 이란은 “UAE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터키는 UAE와의 외교관계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아랍권과 유대인 사회의 대중적 지지 확보도 중요하다.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 체결 2년 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됐다.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는 요르단과 평화조약을 맺은 이듬해 유대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시리아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이 요르단·이스라엘 평화조약의 보복 차원에서 요르단 후세인 국왕 형제 암살 음모를 꾸민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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