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군사합의 파기 행동수순 우려 속
金부부장 “南 태도 따라 결정” 여지
北, 바이든 움직임 주시 후 입장정리
美 새대북정책 검토 수주내 마무리
“외교적 틀 안서 비핵화 협상” 분석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둔 16일 발신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담화는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17,18일 열리는 한·미 외교장관 및 국방장관의 ‘2+2 회담’에서 북한에 불리한 내용이 도출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관계 최악으로 치닫나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발언 수위가 매우 높다. 9·19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가능성과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정리, 남북교류기구 폐지까지 거론했다.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렸다는 점도 단순한 엄포성 경고로 보기 어려워 보인다. 김 부부장은 남한 태도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특단의 대책’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를 관장하는 김 부부장의 발언 이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군 통신선 가동 중단 등이 실행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던 만큼 북한이 군사합의를 파기하기 위한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군사합의 파기 등의 조치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과 경제난 타개, 내부 체제 결속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되는 상황은 곤혹스러울 수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걸고 넘어지려 했다면 훈련이 시작되기 전부터 트집을 잡았을 텐데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면서 “따라서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거론 등은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레토릭’(rhetoric·수사)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평가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담화에서도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왕선택 여시재 정책위원은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강도높은 경고가 나왔지만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즉각적인 대응을 통보하는 표현이 없었다는 점 등으로 봐서 한·미 연합훈련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외교적 움직임에서 결정적인 장애물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 대북정책 지켜본 뒤 입장 정할 듯
김 부부장이 이날 담화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앞으로 4년간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예상 밖이다. 그동안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윤곽이 드러난 뒤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의 메시지는 최근 여러 차례 접촉 시도에도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가운데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중순부터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이날 확인했다. 대화 중단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보도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우리가 (북한과) 접촉한 사실을 확인한다”면서 “우리에겐 항상 접촉할 수 있는 많은 (대화) 채널이 있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외교는 언제나 우리의 목표이며, 우리의 목표는 (긴장) 격화의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여를 위한 미국의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키 대변인은 하지만 “외교는 여전히 우리의 최우선 과제로 남아 있다”고 강조하고 “역내 파트너와 동맹들과의 대화가 계속 확장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이 사안(북한 문제)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검토가 수주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상 간 담판만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전통적인 외교의 틀 안에서 비핵화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할 때까지는 미국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보겠지만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강한 대미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원재연·박수찬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march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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