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라는 제목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에서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 쪽으로 뒤돌아선 채 사회자 선창에 따라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조금만 놀게요. 감사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입을 모아 외친다.
아파트 단지 인근 학교들은 운동회나 체육대회를 열려면 주민 눈치부터 살피는 게 일이다. 주변 아파트 단지나 경찰서 등에 사전 협조 안내문을 돌리기도 하는데, 아이들 함성이나 응원 소리로 민원이 잦은 탓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시내 609개 초등학교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운동회 개최 관련 소음건이 2018년 77건에서 2024년 214건으로 2.7배 늘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인데, 아이들 노는 소리는 듣기 싫다니 참으로 야박하다.
학령인구 감소 등의 여파로 초등학교 운동회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특히 대도시 학교에선 소음 민원 등을 이유로 체험학습으로 대체되거나 격년제로 열리기도 한다. 2014년 조사에선 전국 6000여개의 초등학교 중 약 40%가 운동회를 개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레크리에이션 대행업체를 불러 체육관에서 게임을 즐기는 식으로 치르거나 노래 한 곡 없이 마이크 볼륨도 높이지 않은 채 ‘최대한 조용히 응원하라’고 신신당부까지 한다고 하니 단합과 우의가 넘치는 운동회와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민원이 무서워 학교 운동장마저 노키즈존으로 운영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차별행위’라고 지적했음에도 전국 노키즈존은 2018년 10월 376곳에서 2022년 500곳 이상으로 늘었다(육아정책연구소). 우리 사회가 약자 배려나 공동체 의식 함양보다는 개인의 불편 최소화에만 치중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독일 베를린시가 2010년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하지 않도록 조례를 개정한 것처럼 제도적으로 조치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5월 경기 안양시 임곡중 인근 대단지 아파트에 ‘즐거운 체육대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고 한다. 임곡중 학생들에게 너그러움을 선사한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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