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직 2개월’ 징계에 불복해 “징계를 취소하라”며 낸 행정소송이 19일 처음으로 열렸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징계를 받았는데, 당시 검사징계위원회는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관련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을 징계 이유로 들었다.
만약 이번 행정소송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다’는 판단이 나오면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만큼 이날 재판에 법조계와 정치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과 이정현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은 윤 전 총장을 작심 비판했다.
◆“채널A 사건 대검 인권부 조사 지시는 위법”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이날 윤 전 총장의 징계처분취소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이른바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이 작성됐을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해당 문건은 ‘조국·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등 주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13개 재판부, 판사 37명의 출신학교·주요 판결·세평 등을 담고 있다.
심 지검장은 해당 문건을 “재판에 필요한 게 아니라 언론플레이할 때 쓰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물의야기 법관이라거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거나 (이렇게) 정치 성향을 분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며 “이게 어떻게 활용되냐면 어떤 유·무죄 판단 나오면 해당 재판부가 ‘이런이런 걸 했다’고 하면서 비난한다. 그럼 재판부의 신뢰성이 확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심 지검장은 최근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관련 사건도 언급했다. 해당 사건이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되는 것이 적절했는데, 대검 인권부에서 조사하도록 한 윤 전 총장의 지시는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이 사건 파장이 크고 감찰될 수 있는 사안이라 감찰부에서 조사하고 수사 전환해 강제수사하는게 합리적이고 적절했다고 판단했다”며 “(윤 전 총장의 지시는) 지휘·감독권을 넘어선 일탈, 위법한 지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채널A 사건 자체에 대해서 “항소심에선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 당시엔 무죄나 무혐의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주장했다.
심 지검장은 증인신문을 마치기 직전 “한 말씀만 하겠다”고 운을 뗀 뒤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그는 “징계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검찰총장의 정치적 동기에 따른 신뢰 훼손”이라며 “검찰총장이 국민으로부터 정말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무원으로서 (도리를) 했는가 봤을 때 총장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채널A 사건 골든타임 지나…깡통 핸드폰과 노트북 압수 안타까워”
두 번째 증인으로 나온 이정현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윤 전 총장이 ‘채널A 사건 감싸기’를 했다고 봤다. 그는 “(검찰 고위간부의) 개인적 일탈행위로 특정 방송사의 기자랑 유착했다는 보도였는데 (윤 전 총장이) 인권부에 조사를 지시한 게 이해가 안 됐다”고 했다. 대검 인권부는 강제수사 권한이 없다.
이 부장은 대검에서 사건이 계류돼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도 주장했다. 사건 초반 빠르게 수사에 착수했으면 증거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취지다. 그는 “채널A와 이 전 기자 압수수색을 했는데 이 전 기자가 이미 핸드폰을 그 무렵 폐기해 깡통 핸드폰과 노트북을 압수해 안타까웠다”며 “골든타임이 지나면 증거가 없어지고 말을 맞추면 수사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 부장은 법무부 측 신문 마지막에 “사건이 한 면만 수사돼 실체가 정확하게 밝혀지기 어렵다”며 “(한동훈 검사장이) 무고하다고 입장을 피력하고 있으니 (휴대전화 비밀번호 등) 수사에 협조해 정리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징계위 회피에 법적 문제 없다”
이날 재판에선 지난해 12월 열린 검사징계위원회 과정에서 제기됐던 ‘절차적 위법’ 논란에 대한 심 지검장의 해명도 있었다. 심 지검장은 지난해 12월10일 열린 1차 검사징계위에서 스스로 회피한 것에 대해 “저 스스로 징계심의위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법률상 문제가 없고 저 스스로 공정성을 해하거나 정의롭게 심리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건 없다”면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남길 수 없단 생각 하에 회피를 한 것이지 다른 법적이나 문제적인 게 있어서 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심 지검장은 징계위원에서 물러나는 회피 결정을 하기 전 윤 전 총장 측이 기피신청한 징계위원들에 대한 기피 기각 의결에 참여했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선 심 지검장이 의결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권언유착’이란 합리적 의심 부당한 것 아니었다”
재판이 끝난 뒤 윤 전 총장 측은 심 지검장과 이 부장의 주장을 비판했다. 윤 전 총장 측 변호인은 “이 부장은 이 사건이 이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공모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회유·협박해 어떤 정보를 빼내려는 예단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의사소통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된 것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언유착’이 아닌 MBC(채널A 사건 최초 보도)와 권력자들 사이의 ‘권언유착’일 수 있다는 윤 전 총장의 합리적 의심이 부당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30일 채널A 사건 수사 당시 대검 형사1과장을 지낸 박영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를 증인으로 불러 심리를 속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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