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이유 제재 명단에
북·미 관계진전 또 악재 작용
中·방글라·미얀마도 포함시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에 제재를 가했다. 미국의 잇단 대화 제의에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북·미, 남북 간 교착상태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까지 나오며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급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 재무부는 ‘세계 인권의 날’인 10일(현지시간) 산하기관 해외자산통제국(OFAC) 성명을 통해 북한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인권 침해 관련 개인 15명과 단체 10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재무부는 북한의 중앙검찰소와 사회안전상을 지낸 리영길 국방상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도 북한 중앙검찰소와 리 국방상 등을 제재 대상으로 정했다.
재무부는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불법 취업을 돕기 위해 수백 건의 학생비자를 발급한 러시아 대학 ‘유러피안 인스티튜트 주스토’와 이 대학 학장 드미트리 유레비크 소인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북한 정권이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도 제재를 받는다.
미 재무부는 성명에서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고 있는 동안 북한에 남아 있는 개인들도 종종 강제노동, 지속적인 감시, 인권 및 기본적 자유 행사에 대한 가혹한 제한을 받는다”며 “북한 중앙검찰청과 법원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재판을 수반하는 법적 절차에서 정치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북한에 대한 첫 번째 제재라는 데 의미가 있다. 북한 인권과 관련한 미국의 첫 제재는 2016년 7월 단행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함됐다. 2017년 1월에는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제재 명단에 올랐다.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와 방글라데시, 미얀마에서 발생한 심각한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는 개인과 기관도 포함시켰다. 제재 대상에 오른 개인이나 기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 및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美, 대화 불응 北에 경고장… 인권문제 ‘고리’로 최후 압박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10일(현지시간) 출범 후 처음으로 북한을 제재한 것은 잇단 대화 제의에도 아무런 답이 없는 북한에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재로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제일 강조하는 ‘인권’ 문제를 고리로 북한을 몰아세우려는 의도 또한 명백하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중심으로 인권 문제에 대해 강력히 지적하고, 최근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까지 발표하며 초강수를 두고 있다. 이날 북한을 포함해 중국, 미얀마 등 인권 유린 국가들에 재제를 부과하면서 인권을 고리로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미 재무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지적했다.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은 북한이 불법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외화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북한 노동력 고용에 관여하는 외국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처우에 일조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지속적인 감시, 강제노동, 정권의 임금 상당 부분 몰수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2016년 북한 방문 중 체제전복 혐의로 체포됐다가 혼수상태로 미국에 송환된 후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당시 22세) 사건을 적시한 점이 눈에 띈다. 재무부는 “살아 있었다면 올해 27세가 됐을 웜비어에 대한 북한의 처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북한 정부는 인권과 관련한 참혹한 사건들에 대해 앞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 인권 유린과 연관된 일부 단체 및 간부 역시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위구르족에 대한 안면인식 기술을 개발한 중국 인공지능 업체 센스타임 그룹은 투자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대량살상을 저지르는 미얀마 군부 등에도 제재가 가해졌다.
미국의 북한 제재는 북·미 및 남·북·미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따른다. 그간 북한은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와 재제 완화 등을 요구해 왔다. 이날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추가 제재를 부과하며 북한 반발이 예상된다.
일단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소집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민주주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할 아무런 명분도, 초보적인 자격도 없다”며 “대결과 분열의 서막,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해) 국제사회가 내린 정의”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패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나라들에 대대적인 정치 공세를 가하려는 흉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철두철미 세계 패권을 노린 미국의 냉전식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가 미국과 함께 추진 중인 종전선언은 북한과의 논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북한 제재가 종전선언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