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회의…“국민 피해” 거듭 강조
“검수완박은 檢 없애버리겠다는 것”
상당수 고검장도 거취 표명 뜻모아
박범계 “공정수사엔 일사불란 안해”
법조계 “‘검란’ 비화 땐 역효과 우려”
민주, 12일 정책 의총서 방침 정한다
국힘 “필리버스터 등으로 총력 저지”
인수위도 “사법체계 근간 흔드는 일”
정의당마저 “검수완박, 동의 어려워”
여의도 대치전선의 ‘최대 변수’ 부상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교체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검찰의 ‘대여(對與) 전선’이 형성됐다. 입법 과정에서 거대 여당의 법안 강행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검찰로선 검수완박의 폐해를 알리는 여론전에 총력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총장이 ‘총장직 사퇴’를 시사하면서 검사장급은 물론 평검사들의 ‘릴레이 사의’ 표명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의 이 같은 집단행동이 ‘검란(檢亂)’으로 비쳐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당 의원총회 전날 이뤄진 검사장 회의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 총장 주재로 열린 전국 지방검사장 회의 주제는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대응 방안이다.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사보임으로 민주당의 검수완박이 코앞에 닥쳤고, 12일 의원총회에서 법안 처리 방향이 정해지기에 검찰로서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면서 “검수완박은 헌법 정신과 가치 훼손”이라고,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충분한 검토 없이 법을 또 바꿔 버리면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라고 각각 작심 발언을 쏟아 냈다.
검찰은 최근 나흘 동안 대여 메시지 수위를 점차 높여 왔다. 지난 8일 김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권상대 대검 정책기획과장의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 글을 시작으로 같은 날 전국 고검장 회의에서 검수완박 관련 공식 반대 입장과 함께 “총장을 중심으로 현 상황에 적극 대처해 나가겠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대구지검, 법무부 검찰국 등 단위별 회의가 뒤따랐고, 전날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선 부장검사들의 공개 반대 입장문이 발표됐다.
검찰 관계자는 “검수완박 법안의 경우 검찰의 권한을 하나하나 떼어 내는 게 아니라 검찰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사라지는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검수완박 피해자는 국민”…총사퇴 시사도
지검장들은 이날 6시간 이상 진행된 회의 끝에 검수완박의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명분인 검찰 수사의 공정성 및 중립성과 관련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김 지검장은 회의가 끝난 뒤 “(민주당이) 수사기능 자체를 폐지한다는데 수사를 계속할 수 있어야 공정성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국민 설득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관련해서도 “미리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김 지검장은 국회에 검찰 수사권을 포함해 형사사법제도 전반을 논의할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가칭) 구성을 요구한 것이 ‘시간끌기용’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법원, 경찰, 대한변호사협회, 시민단체 등 모든 분의 의견을 들어 보고도 검찰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 저희들이 그땐 물러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검장들은 회의에서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일련의 의견 표명이 ‘집단반발’로 평가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를 ‘정치개입’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선 반박했다. 김 지검장은 “일반 국민도 국회 입법사안에 청원을 하고 기관에 의견을 낸다”며 “국회 입법권에 대해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지검장들은 이날 김 총장의 ‘사퇴 배수진’에 발맞춰 ‘총사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당장 사의 표명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법안 처리 상황에 따라서 ‘줄사표’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상당수 고검장들은 지난 8일 열린 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거취 표명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검장들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통상의 절차를 거쳐 이 같은 뜻을 전하기로 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별도 의견을 전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범계 “좋은 수사엔 왜 일사불란하지 못했나” 비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집단 반기에 불편함을 내비쳤다. 박 장관은 이날 법무부 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일사불란하게 공개적으로 대응하는 걸 보며 좋은 수사, 공정성 있는 수사에 대해서는 왜 일사불란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법관에게 좋은 재판을 위한 방편으로 사법권의 독립이 있듯, 검사에게는 좋은 수사가 본질이고 그를 위한 방편의 문제가 논의되는 것”이라며 “주객이 전도돼 있다”고 꼬집었다.
◆정의당 “동의 어렵다”… 여의도 대치전선 최대 변수로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이면서 여의도 정치권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의 압박에 어떻게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 검수완박 등 검찰개혁을 마무리 짓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한 반면,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총력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원내 제3당인 정의당까지 검수완박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여야의 대치 전선에 변수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11일 처음으로 참석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에는) 문재인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 방해 의도와 대선 패배 결과에 대한 불복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정부 인사들과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이 전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 등을 둘러싼 의혹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한 의도라는 주장이다. 권 원내대표는 “검수완박은 지방선거 때 ‘윤석열정부가 ’검찰공화국‘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간다’고 하면서 민주당이 유리해지기 위한 프레임”이라고도 의심했다.
같은 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성명을 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검수완박은 ‘이재명 비리 방탄법’”이라며 “민심과 맞서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대국민 여론전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추진했던 ‘언론중재법’이 반대 여론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일을 상기하며 같은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당내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주효할 것이란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끝내 입법 강행에 나설 경우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민주당이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 추진을 결정하면 필리버스터라든지 물리적 대응을 할 건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그 순서대로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개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 야당이 됐다”며 여당이 아닌 야당의 마음으로 저지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정무사법행정 분과에서 국회 상황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일희 수석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국민적 우려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는 “윤 당선인은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관련 당론을 결정하기로 한 12일 정책 의원총회가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당 지도부는 집단반발에 나선 검찰을 맹폭하면서 강행 처리를 시사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은 도를 넘은 정치개입을 즉각 중단해주기 바란다”며 “검찰총장이 언론을 상대로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검찰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왕왕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집단행동에 나섰다”며 “이런 행동들은 결코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없다”고 거듭 검찰을 질타하기도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같은 회의에서 “정책 의총에서 국민과 당원, 지지자의 뜻이 더해져 결론에 도달하면 국민과 역사를 믿고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강행하려는 배경에는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강경파 의원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당이 검찰·언론개혁 법안을 제대로 밀어붙이지 않는 등 ‘미진한 개혁’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고 보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도 의원들을 움직이는 한 요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강성 지지층은 육두문자를 날리며 압박했는데, 요즘은 2030 여성 지지층이 늘어나면서 존댓말로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1004원 후원금까지 보내고 있다”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정의당은 검수완박의 시기와 방식, 내용 등에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영국 대표는 이날 대표단 회의에서 “(민주당이) 다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자고 한다”며 “국민들이 시급한 과제임에 동의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여 대표는 검수완박 자체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선이 끝나고도 양당 진영대결이 지속되는 지금 검수완박은 의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만 증폭시켜 갈등만 확대될 뿐, 좋은 해답에 접근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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