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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시조, 唐詩에서 영감 얻었다

입력 : 2022-04-27 01:00:00 수정 : 2022-04-26 19: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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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조선사람이 좋아한 당시’ 출간

이백의 ‘호방함’과 두보의 ‘소박함’
조선의 선비·여성·평민들 모두 즐겨

대표 선집 ‘당시삼백수’ 20세기 도입
조선시대엔 ‘당음’ 선집으로 첫 공부
19세기 ‘오언당음’ 등 두루 사랑받아
중국의 문학이지만 조선의 교양이 돼
두보(왼쪽), 이백

“그대 남포에서 보내니 눈물 줄줄 흐르는데/ 그대 동주로 떠나가니 내 마음이 슬퍼지네./ 벗에게 말하노라, 내 심히 초췌해지니/ 지금 낙양에 있을 때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送君南浦淚如絲 君向東州使我悲 爲報故人??盡 如今不似洛陽時)

동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이별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왕유의 7언절구 ‘송별(送別)’이다. 시는 남포에서 동주로 떠나는 벗을 보내는 심정을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뒤의 두 행은 시인이 눈물을 흘리며 친구에게 하는 말로, 이별의 슬픔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헤어지면 자신은 매우 초췌해질 것이라고, 낙양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왕유의 ‘송별’이 나온 이후 남포는 이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포구가 됐다. 특히 고려말 문신 정지상 역시 남포를 이용해 또 다른 절창 ‘송인(送人)’을 지었다.

“비 그친 긴 제방에 풀빛이 짙어지는데/ 남포에서 임 보내니 슬픈 노래 일렁인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 건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강물에 더해가건만”(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派)

단정한 한시 번역으로 정평 난 서울대 이종묵 교수가 ‘시 중의 시’로 꼽히는 당시(唐詩) 200수와 함께 이들 당시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의 한시·시조·판소리 600수를 수록한 책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민음사)를 펴냈다. 불교 사상이 담긴 왕유의 시편, 이백의 호방함과 두보의 소박함이 담긴 당시의 명편뿐만 아니라 선비와 여성, 저잣거리의 평민 등 조선 사람들이 당시를 어떻게 사랑하고 노래하고 즐겼는지를 알 수 있다.

“거문 머리 백발 되니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이라, 무정한 게 세월이라.” 과거에 합격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돼서 어사 출두하기 직전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판소리 ‘열녀춘향 수절가’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조여청사모성설’이라는 표현은 이백의 유명한 시 ‘장진주(將進酒)’의 다음 대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울대 이종묵 교수가 당시 200수와 함께 이 당시들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의 한시·시조·판소리 600수를 수록한 책을 펴냈다. 이 교수는 당시는 중국의 문학이지만, 조선의 선비와 여성, 저잣거리의 평민들이 즐긴 조선의 교양이었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이백의 기념관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대 보지 못하였나,/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달려가 바다에 이르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또 보지 못했나,/ 고대광실에서도 거울 속의 백발을 슬퍼하니/ 아침에 검은 실이 저녁에 눈처럼 희어지는 것을./ 인생이 뜻대로 되면 모름지기 실컷 즐길 것이니/ 황금 술잔이 헛되게 달을 마주하게는 마시라.”(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선조 28), 조선의 명장 이순신은 남해안 진중에서 닥쳐올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시조 한 수를 써내려간다. 바로 ‘한산섬 달 밝은 밤에’였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는 나의 애를 끊나니”

그런데 우국충정과 인간적 심정을 차분하게 그린 이순신의 시조 역시 중국 고적의 다음 시 ‘새상청적(塞上聽笛)’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적는다.

“오랑캐 땅 눈이 개자 말이 돌아오는데/ 달 밝은 밤 피리 소리 수루에 들려오네./ 매화는 그 어느 곳에 지고 있을까?/ 밤새 바람 소리 변방에 이리 가득한데.”(雪淨胡天牧馬歸 月明羌笛戍樓間 借問梅花何處落 風吹一夜滿關山)

이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접하는 대표적인 당시 선집은 ‘당시삼백수’인데, 이는 거의 20세기 들어와서 읽히기 시작한 선집이었다. 반면 조선 시대 사람들은 ‘당음’이라는 선집으로 당시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19세기에는 대중들에게 판매하기 위한 방경각본으로 ‘당음’을 편집한 ‘오언당음’ ‘칠언당음’ ‘당시장편’ 등이 간행됐다. 조선의 선비와 여인, 저잣거리 평민들은 이 선집들을 통해 당시를 접하고 노래하고 즐겼다는 것이다.

“춘향과 호방이 당시를 꿰고 있었던 것처럼, 조선은 남녀노소,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당시를 얼음에 박 밀 듯 줄줄 읽었다. 이처럼 당시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이므로 중국 문학이지만 조선 사람에게도 익숙한 교양이었다.”

이 교수의 책은 조선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접하고 즐겼던 선집인 ‘당시장편’에 수록된 200편을 번역 분석한 것이다. 특히 수많은 문헌을 찾아가면서 이들 당시가 국내에서 어떻게 수용됐는지를 살핀 대목은 당시의 수용 양태까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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