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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처럼 여겨지던 1960년대, 참 이상한 물건이 미술관에 전시됐다. 앤디 워홀이 가루세탁 용품인 브릴로 세제를 담은 상자를 재현해서 미술작품으로 선보였다. 이른바 팝아트인데, 워홀은 이 작품으로 당시 유행한 추상미술이 너무 어렵고 때로는 모호하기도 하다는 점을 겨냥했다. 대중이 익숙하게 접하는 이미지나 상품 형태로 작품을 나타내서 예술의 대중화, 사회화를 이루자는 취지였다.

그래도 그렇지, 세제 상자가 예술이라니? 팝아트 작가들은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서 보여주는 것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제 상자 같은 상품 이미지도, 만화나 TV에서 보는 익숙한 이미지도, 거리 간판이나 포스터들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술적 가치와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앤디 워홀 ‘브릴로 상자’(1964)

어떤 예술적 효과가 있을까. 사람들이 슈퍼마켓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세제 상자는 눈여겨보지 않는다. 하지만 워홀이 미술관에 전시한 이 작품을 대하면 흥미롭다고 생각하면서 세제 상자를 다시 한 번 주목한다. 상자 형태를 다시 보고, 상자 위에 새긴 글씨체도 다시 보고, 디자인과 색상과 그 조화도 새롭게 느낀다. 미술관에서 보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되는 예술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한 후, 이 사람은 세제 상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하찮게 생각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도 예술적 가치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보고 고르는 행위를 예술적 행위로 여길 수도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듯 팝아트는 미술작품이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신비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으며, 생활 속의 예술로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 줬다.

날이 더워지는 주말이다. 즐거운 경험을 얻기 위해 무엇을 찾기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떨까. 그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그냥 스쳐 지나쳤던 것들 속에서 즐거움과 예술적 가치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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