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만난 수묵화 풍경 ‘쭉람박마’/산위 우뚝 선 무게 1500t· 높이 24m 불상 장관/베트남 역사 품은 티엔무 사원엔 독재 항거 ‘소신공양’ 틱꽝득 승려 저항 정신 담겨/동남아시아 최대 석호 땀장라군 품은 베다나 라군 리조트선 미식 즐기며 편안한 휴식/닉 필도 설계 라구나 랑코 골프 코스·올해 9월 문을 연 ‘신상’ 골든 샌즈 골프 코스 겨울 골퍼들에게 인기
파른 계단을 천천히 걷는다. 구도자의 심정으로. 어느덧 12월. 올해 과연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나 하나만 챙기며 부모, 형제,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배려심이 없는 날카로운 말들로 행여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내년에는 모든 일이 좀 더 잘 풀려야 할 텐데. 이런저런 번잡한 고민 무겁게 안고 172개 계단 힘겹게 올라 베트남 후에의 불교 선원 트룩람바흐마(쭉람박마) 정원에 섰다. 지나온 가파른 계단 너머로 펼쳐지는 드넓은 뚜루이 호수. 구름마저 쉬어가는 박마산의 몽환적인 풍경. 그리고 대나무숲을 헤치며 불어오는 바람은 속세의 하찮은 고민을 이제 훌훌 털어 버리라고 귓가에 속삭인다.
◆베트남에서 만난 수묵화 풍경
대한민국 다낭시. 요즘 한국 여행자들은 베트남 중부 다낭을 이렇게 부른다. 그만큼 다낭은 한국 여행자로 늘 북적인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의 수도인 트어티엔후에성 후에시로 떠나는 여행은 인천공항에서 약 5시간이면 닿는 다낭공항에서 시작한다. 후에시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인데 중간쯤에 있는 담까우하이 석호 근처에 한국 여행자들이 잘 모르는 비경이 하나 숨어있다. 바로 쭉람박마 사찰이다. 깊은 산속에 보일 듯 말 듯, 들어앉은 사찰은 연결도로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뚜루이 호수를 건너는 배로만 접근할 수 있다.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는 아주 작은 나룻배가 천천히 호수를 가르자 믿기 힘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 위에 우뚝 선 거대한 불상이라니. 무게 1500t, 높이 24m인 불상은 온통 돌로 만든 조각으로 인자한 표정으로 호수를 내려다본다. 부처의 탄생부터 열반에 들기까지 일대기가 그림으로 조성돼 많은 이가 불상을 찾아 참배하고 평안을 기원한다.
오로지 산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숲길을 10여분 걸으면 172개 계단이 등장한다. 계단 하나마다 근심과 걱정 하나씩 호수 속으로 던져 버리며 가파른 길을 올라 기둥에 금색으로 글자를 새긴 삼문을 통과하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마주한다. 비가 그친 뒤 사찰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바람이 연주하는 산사의 풍경 소리. 그리고 비강으로 파고드는 은은한 침향까지. 마치 여백의 미학이 담긴 수묵화 속에 서 있는 것 같으니 마음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인생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이곳을 방문하면 머릿속이 명료해지며 새 길을 찾을 힘을 얻을 것 같다.
쭉람박마는 베트남 중부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로, 주로 현지인들이 찾아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다. ‘쭉람’이란 대나무 숲이란 뜻으로 실제 산에 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란다. 특히 400㏊ 규모의 드넓은 산중 호수는 새벽녘이나 안개 낀 날에는 수묵화 같은 비경을 펼쳐내 ‘산속에 핀 연꽃’으로 불린다. 대웅전의 불상도 독특하다. 보리수나무 그림을 배경으로 앉은 부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포근하게 여행자를 보듬어 준다.
◆베트남 역사 품은 티엔무 사원
다시 북쪽으로 1시간을 더 달리면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후에시로 들어선다. 도시를 관통하는 흐엉강을 따라 서쪽 외곽으로 나서자 사색하기 좋은 티엔무 사원이 등장한다. 중국이 약 1000년 동안 지배한 베트남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오래된 불교 사찰이 많이 남아있는데 1601년에 건립된 티엔무 사원도 베트남 불교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입구에서 만나는 높이 2m의 팔각 7층 석탑 푸옥주엔탑이 사원의 상징이다.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기 좋다. 비단잉어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아름다운 연못과 다양한 분재로 꾸민 마당, 드넓은 잔디밭으로 꾸며진 덕분이다. 연못 근처에 작은 승용차가 하나 놓여 있는데 승려 틱꽝득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독재 정권에 항의한 역사를 전한다. 1963년 6월 11일 67세이던 틱꽝득은 이 차를 몰고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권의 불교 탄압에 항거하기 사이공(호찌민)에서 열린 승려들의 침묵시위 현장을 찾았고 승용차에서 빼낸 휘발유를 끼얹어 자신을 불사르는 소신공양을 했다. 이 사건은 응오딘지엠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은 사건으로 유명하다.
◆바다 같은 라군에서 즐기는 휴식
베트남 여행은 겨울인 12~2월이 가장 좋을 때다. 평균 최저·최고 기온이 섭씨 20~24도여서 여행하기에는 환상적인 날씨다. 더구나 베트남 중부 트어티엔후에성에는 동남아시아 최대 석호 땀장라군이 있어 천혜의 절경을 즐기며 잊지 못할 휴가를 보내기 좋다. 7개 석호로 이뤄진 땀장라군은 수면 면적이 무려 2만2000㏊에 달하며 남북으로 70㎞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데 남쪽 끝에 가장 큰 규모인 담까우하이 석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석호 주변 숲 27㏊를 보유한 휴양시설이 베다나 라군 리조트 앤드 스파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따뜻한 생강차를 내놓으며 밝은 표정으로 맞는다. 환대를 받으니 여행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고개를 석호로 돌리자 영화에서나 보던 환상적인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수많은 단독 빌라가 석호 가장자리를 따라 물 위에 떠 있는 이색적인 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워터풀빌라로 불리는 객실로 들어서자 은은한 허브향이 비강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바닥 일부는 투명한 강화 유리로 꾸며져 마치 물 위를 걷는 것 같다. 거실문을 열면 프라이빗 풀과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은 석호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무엇보다 한쪽 면만 막아놓아 탁 트인 전망을 즐기면서도 옆 빌라 손님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리조트는 빌라동 92개에 객실 142개, 레스토랑 3개, 바 1개, 수영장 3개를 갖췄다. 리조트 입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객실까지 걸어서 20~30분 걸릴 정도로 공간이 넓어 쾌적하다. 야자수가 이국적인 산책길을 걷는다. 한낮에도 땀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선선하니 베트남이 맞나 싶다. 곳곳에 자전거가 놓여 있어 걷다 지치면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면 된다. 또 객실에서 전화로 요청하면 1~2분 만에 득달같이 달려오는 전통카트 버기를 타고 리조트 내 레스토랑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버드 가든도 있는데 앵무새 150마리가 살아간다.
베트남에 왔으니 쌀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데이브레이크 레스토랑에선 베트남 정통 쌀국수를 즐길 수 있다. 역시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맛이 좀 다르다. 가는 면, 소고기 편육, 둥글게 뭉친 다진 닭고기가 담긴 그릇에 진한 육수를 부어주는데 여기에 홍고추, 풋고추를 솔솔 뿌린 뒤 유칼립투스와 고수를 얹고 라임 한 조각을 꾹 눌러 짜면 허브향 가득한 ‘찐 베트남’ 쌀국수가 완성된다. 고수향이 그리 강하지 않아 싫어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런치와 디너를 즐기는 호라이즌 레스토랑에서도 튀긴 돼지고기를 넣은 스프링 롤과 잎으로 감싼 다진 소고기, 새우를 곁들인 쌀 볶음밥 등 다양한 현지식을 즐길 수 있다.
베트남의 골프장들은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됐다. 겨울이면 한국 골퍼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후에 지역에서 인기 높은 골프장은 라구나 랑코 골프 코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에서만 6승을 거둔 닉 팔도가 설계한 18홀 파 71의 챔피언 코스를 보유하고 있다. 5263야드에서 7100야드까지 다양한 전장을 갖췄고 바다, 산, 논 전망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멋진 코스를 선사해 독특한 풍경과 몰입감 넘치는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또 골프 코스 외에도 반얀트리 랑코와 앙사나 랑코 등 고급 리조트, 스파, 수상 시설, 다양한 레스토랑을 갖춰 휴양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올해 9월 문을 연 골든 샌즈 골프 코스는 후에 시내에서 20㎞ 정도로 가깝다. 세계적인 니클라우스 디자인과 BRG 그룹이 설계한 해안 링크스 스타일 코스가 돋보인다. 클럽하우스는 5성급 로커 시설과 올데이 다이닝, 골프숍을 갖췄고 북동쪽을 바라보는 대형 파티오에서는 해안가 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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