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송년회 시즌이다. 보통 연말이면 회사나 초중고, 대학을 비롯해 해 넘어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모임까지 합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술자리가 많아 한때는 ‘119’(한 가지 술, 한 장소, 밤 9시 이전에 끝내자), ‘222’(반 잔만 채우고, 두 잔 이상 권하지 않고, 2시간 이내에 술자리 마무리) 등 건전한 회식문화를 권장하는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크리스마스·송년회가 겹친 연말 특수는 자영업자에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비상계엄·탄핵 정국이 이런 연말 풍경을 블랙홀처럼 송두리째 빨아들이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0∼12일 사흘간 전국 일반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 전망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9명(88.4%)이 비상계엄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는 소상공인이 36%로 가장 많았다. 계엄 선포 이후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이 지난해보다 9%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니 걱정이다. 대통령 탄핵이 아닌 ‘송년회 탄핵’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라고 했다. 8년 만에 맞닥뜨린 탄핵 정국 여파로 서민경제가 꽁꽁 얼어붙어서다. 골목상권이 붕괴 직전이고, 공무원을 상대로 하는 세종시 상권마저 초토화되자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앞다퉈 송년회 재개를 ‘읍소’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금융권에선 ‘회식이 애국’이라는 독려 문구까지 등장했지만 무용지물이다.
과거 두 차례의 전직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에는 중국 경제 활황과 반도체 호조가 메워줬다지만 지금은 기댈 언덕도 없다는 게 문제다.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결국 ‘경기회복세’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대신 ‘경제 심리 위축’, ‘하방 위험 증가’라는 어두운 단어만 난무한다. 비상계엄이 초래한 웃픈 현실이다. 올해는 해를 보내는 송년회가 아니라 일본식 표현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잊고 싶은’ 망년회(忘年會)가 더 연말 분위기에 어울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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