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며 불안정한 정국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외신은 ‘정치 마비’까지 언급하는 등 현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로부터 촉발된 고환율 상황은 이를 상쇄할 방법이 없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까지 촉발할 수 있어 조속한 탄핵 정국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환율 1480 돌파, 코스피 2400선 붕괴
27일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11시3분 기준 1482.6원을 기록했다. 달러·원 환율이 1480원을 넘은 건 지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코스피도 환율 상승, 정치 불안, 배당락까지 악재가 겹치자 장 중 1% 넘게 내리면서 2400선이 붕괴됐다.
사실상 지난 26일 한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의결한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임명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할 헌재 구성에 차질이 생기며 경제 주체들이 가장 꺼리는 ‘불확실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AP 통신은 이에 대해 “고위급 외교를 중단시키고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정치 마비’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에서 촉발되는 고환율 상황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경제 약체에 더 가혹하다. 해외자산 및 리스크 헤징 전략 등 다양한 고환율 상쇄 도구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고환율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을 상쇄할 방안이 부족한 까닭이다. 특히 을의 위치에 있는 하청업체의 경우 물품 단가 협상력이 떨어져 원가 상승분을 온전히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은 중소기업이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면 대기업이 이를 수출하는 구조”라며 “그런데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상대로 협상하기가 어려우니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손실을 온전히 떠안아야 해 고환율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 장기화하면 외환위기까지 올 수 있어”
음식점 등 소상공인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식재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고환율에 취약한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행하는 양정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지난 2022 양곡 연도(2021년 11월~2022년 10월) 기준 22.3%였다. 1년 동안 소비하는 곡물의 4분의 1가량만 자급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는 셈이다.
계엄 이후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뚝 끊긴 것도 소상공인의 어깨를 짓누른다. 계엄 해제 뒤 우원식 국회의장이 ‘송년회를 취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어수선한 정국, 코스피 하락 등에 따른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인천에서 2년째 삼겹살집을 운영 중이라는 남궁(35)모씨는 “계엄 직후 송년회 예약이 다수 취소됐고 식당을 찾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어 알바생 한명을 줄였다”며 “적자는 간신히 면하고 있지만 내 인건비를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이 길어질 시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현재 주식시장은 전쟁 중인 러시아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낮은 데다 환율도 가장 많이 떨어졌고, 외환보유고도 아마 실질적으로 4000억달러 이하일 것”이라며 “현 상황이 길어질 경우 과거 외환위기와 같은 극단적 상황까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쁘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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