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축문화 ‘방애’ 재현 ‘오름 불놓기’
환경훼손·산불 우려로 존폐 논란
5m 디지털 달집·LED 횃불 활용
불 관련 콘텐츠, 디지털로 형상화
크로스오버 거장 양방언 공연 등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도 ‘풍성’
지난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제주들불축제가 기후·환경 위기 등으로 친환경·디지털 ‘들빛축제’로 재탄생한다. 27일 제주시에 따르면 ‘2025 제주들불축제’는 ‘우리, 희망을 피우다!’를 주제로 다음 달 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원에서 열린다. 제주시는 올해 제주들불축제는 ‘오름불놓기’를 포함한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 등의 콘텐츠를 디지털로 전환해 새롭게 연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는 최근 2년 남짓 들불축제 오름불놓기의 개편을 두고 지역주민 의견 수렴 등 각계 의견을 듣는 등 고민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불’축제인데, 불을 없애는 게 축제 취지에 맞느냐는 것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규모로 불을 놓는 축제가 과연 타당하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환경단체 등에서 생태계 훼손 비판과 산불 우려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정책을 내세운 제주도 도정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들불축제 찬성 측 의견도 만만치 않다. 들불축제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축제장을 둔 일부 주민들은 제주시의 축제 개편 계획에 반발해왔다.

◆디지털로 달집태우기·횃불대행진 재현
들불축제의 핵심 콘텐츠인 ‘오름불놓기’는 제주도 목축문화인 들불놓기(방애)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새별오름(해발 519m) 30만㎡를 태우는 행사다. 하지만 환경훼손과 산불위험 등의 이유로 존폐 논란이 일었고, 제주시는 숙의형 원탁회의 등을 거쳐 결국 오름불놓기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에는 축제를 개최하지 않았다.
제주시는 제주들불축제의 핵심이었던 오름불놓기를 폐지한 데 이어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 등 소규모 불 관련 행사들도 모두 없애기로 했다. 소규모 불 관련 행사는 전면 취소하고, 모두 디지털 행사로 전환한다. 문춘순 제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탄소중립과 기후환경 위기라는 과제 앞에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해 디지털 행사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달집태우기는 높이 5m의 디지털 달집으로 대체하고, 달집 앞에 설치된 소원판(키오스크)에 작성한 소원을 디지털 달집에 바로 송출하기로 했다. 또 횃불대행진은 기존 등유와 파라핀을 사용한 횃불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횃불로 변경해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축제에 앞서 제주시 삼성혈에서 채화한 ‘희망불씨’도 축제 개최 장소인 새별오름에 안치한 뒤 디지털로 점화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작가인 양방언씨가 음악으로 희망을 피운다. 그는 ‘prince of jeju(프린스 오브 제주)’, ‘Frontier(프런티어·개척자)!’, ‘아리랑 판타지’ 등 다수의 곡을 발표해 경계를 허물고 희망과 도전을 노래하는 크로스오버 거장이다. 제주 출신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6세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중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넘나들며 음악으로 국적, 민족, 국경의 경계를 허물고 희망과 도전을 노래하는 재일 제주인 음악가다. 세계제주인대회 홍보대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등을 역임했다.
양씨는 솔로앨범 ‘PAN-O-RAMA’에 수록된 프런티어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곡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프린스 오브 제주’, ‘Flowers of K(플라워스 오브 케이)’ 등 한국의 동양적 정서를 서양음악과 융화한 악곡이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2013년 대통령 취임식 축하공연에서 ‘아리랑 판타지’를 작곡, 합창을 포함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각종 경연·체험 프로그램으로 풍성한 축제”
들불축제 첫째날인 14일에는 삼성혈 채화 제례와 희망기원제, 각종 경연·체험 프로그램으로 축제의 흥을 올린다. 저녁 개막식에서는 ‘희망, 틔우다’를 주제로 한 공연으로 모두의 안녕과 희망을 기원한다.
축제 둘째날인 15일에는 ‘희망, 오르다’를 주제로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을 포함한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와 디지털 연출기술을 활용해 들불을 빛과 영상으로 조화롭게 연출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방문객들에게 환희와 희망을 안길 예정이다.
마지막날인 16일에는 ‘희망, 잇다’를 주제로 청소년가요제, 새 희망 묘목 나눠주기 등 행사가 대미를 장식한다.
시는 이 밖에 제주의 전통 요소를 담은 불턱(밭담) 쌓기 등의 체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집줄놓기, 듬돌들기 등 민속놀이 전국대회를 열어 도내외 방문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탄소중립 스탬프랠리, 환경퀴즈쇼 운영과 업사이클링 체험 공간들을 배치하는 한편 오름트레킹 프로그램 운영으로 환경을 생각한 축제로 만든다. 사회적경제기업과 함께하는 ‘향토장터’를 운영하고, ‘상생 싱싱장터’에서는 우수한 농수특산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시는 주차·교통 대책도 내놨다. 정체·혼잡을 줄이기 위해 애월 방향 셔틀버스 노선을 추가해 평화로 교통량을 분산하고 셔틀버스와 대중버스 이용을 유도하는 축제 프로그램을 편성 운영할 예정이다.
들불축제는 제주의 전통적인 목축문화 가운데 하나인 목장에 불을 놓는 ‘화입’ 또는 방애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관광상품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1997년 시작됐다. 제주에서는 중산간 일대 목초지에 소와 말의 방목을 위해 묵은 풀과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기 위해 불을 놓는 풍습이 있었으나 산불 우려 등으로 1960∼1970년대 자취를 감췄다.

◆김완근 제주시장 “기후환경·탄소중립 위기 속 지속가능한 축제로 재탄생”
“탄소중립과 기후환경 위기라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친환경 축제로 재탄생합니다.”
제주 지역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를 주최하는 김완근(사진) 제주시장은 “올해 전면적으로 디지털 행사로 변경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시장은 2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시도 속에서도 액운을 쫓고 희망을 기원하는 축제 본연의 의미를 담은 들불축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 이래 30년 가까이 제주를 대표한 축제인 만큼 들불축제가 지속 가능한 축제로 계속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지 축제 본질이 바뀌지는 않기에 축제명을 제주들불축제로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다른 축제에서는 건물 내부 또는 외벽을 활용한 영상 송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제주들불축제는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비추는 빛, 조명 영상과 세계적 음악가 양방언, 제주 각 지역의 풍물패가 하나되는 공연으로 현대음악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오름불놓기를 대체할 신규 프로그램 마련에 집중했다”고 토로했다. 시가 올해 제주들불축제에서 ‘희망, 오르다’를 주제로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 등 불 관련 테마와 함께 빛, 조명, 영상으로 오름불놓기를 선보이는 이유다.
들불축제는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하지만 들불축제에 깔린 정체성은 변함없다는 설명이다. 김 시장은 “친환경 측면에서 큰 변화가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축제 취지에 맞게 다회용기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는 등 ‘탄소중립도시 제주’에 맞는 축제가 되도록 하겠다”며 “오름에 불을 놓지 않으면서 오름의 아름다움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제주들불축제가 읍·면·동 화합 축제였던 만큼 쉼터를 운영해 지역 주민들이 소통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민속경연대회, 풍물대행진 등 읍·면·동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축제를 마치고 축제 평가, 여론 등을 수렴해 여러 가지 개선 사항을 검토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2026년 문화관광축제 예비축제 지정을 신청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2025년 새롭게 시작되는 제주들불축제인 만큼 지역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전통과 변화가 잘 조화된 지속 가능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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