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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제도보다 ‘운용의 묘’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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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09 23:12:58 수정 : 2025-04-09 23: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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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파면선고 후 개헌 목소리 커져
여소야대 정국의 정부·국회 충돌
헌법 고친다고 근본 해결책 안 돼
양보·타협의 정치문화 정착 시급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이 공개됐다. 대통령과 총리 둘 다 강한 권한을 갖는 독특한 정부 형태를 놓고 ‘반(半)대통령제’, ‘이원집정제’ 등 평가가 쏟아졌다. 수십년간 제도를 시행해보니 한 가지 점은 확실해졌다. 의회가 여대야소일 때는 대통령제, 여소야대일 때는 의원내각제처럼 운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에선 원내 과반을 차지한 야당이 총리를 배출하고 국정을 이끄는 가운데 정작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은 무력화됐다. 이를 ‘동거(同居)정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본질은 내각제에 가깝다.

2025년 현재 프랑스는 여소야대다. 그런데도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처럼 운용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야권이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으로 양분돼 있어서다. 중도 성향의 여당까지 포함한 3개의 주요 정치 세력 중 아무도 단독으로 원내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NFP와 RN이 힘을 합치면 야권이 주도하는 연립정부 형성이 가능하겠으나, 둘은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결국 프랑스는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총리가 원내 과반 지지 없이 소수당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비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여당은 NFP를 구성한 여러 분파 중 상대적으로 온건한 사회당과 손잡고 올해 예산안을 뒤늦게 통과시켰다. 정부·여당이 공교육 분야 일자리 삭감 백지화 등 사회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에 흠결이 있거나 헌법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져도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 파국은 막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많은 이들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며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개정을 주장한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은 여대야소 정국에서 대통령이 여당 총재(현 당 대표) 자격으로 소속 의원들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는 관행은 진작 사라졌다. 더욱이 요즘은 여소야대 국회 출현이 빈번하다. 2016년 20대 총선과 지난해 22대 총선이 모두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2022년 5월 취임한 윤 전 대통령은 3년 남짓한 짧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을 겪었다.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가운데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장관들을 임명하거나 국회를 통과한 몇몇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윤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몰아가선 곤란하다.

2016년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꼭 6개월여 만에 박근혜정부가 국회 탄핵소추로 무너졌다. 지난해 역시 여소야대인 22대 국회 개원 후 윤석열정부가 쓰러지기까지 걸린 기간과 일치한다. 우리 헌법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와 국회의 극한 대립이 끝내 정부 붕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길이 막막하다는 점이다. 하나 이를 헌법의 결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을 비롯해 그 어떤 대통령제 국가 헌법도 여소야대의 위기를 타개할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그저 국가 지도자들이 냉철한 이성과 투철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서로 협조해 국정이 파탄 나지 않게끔 운용의 묘를 발휘하길 기대할 뿐이다.

이는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통해 정치권에 주문한 것이기도 하다. 원내 과반 다수당으로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헌재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에 노력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소수당인 국민의힘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정부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의미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겐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책망했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듣기 싫다고 국회 개원식조차 불참한 협량함을 꼬집은 셈이다. 요즘 여러 지도자가 앞다퉈 개헌을 외치지만 그 실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정치인들이 명심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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