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자리 잡은 밀라노 기사식당은 2020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낙후된 지역으로, 교통편도 좋지 않은 이곳에,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하던 시기에 문을 연 밀라노 기사식당은 손님이 가득 찬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음에도 문을 열고 영업을 했다.

최근 밀라노 기사식당에서 만난 박정우 오너셰프는 “호텔조리학과에서 공부할 때 작은 레스토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다”며 “2020년 12월 ‘식당 문을 닫아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중에 한 커플이 와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빈 그릇을 보고 ‘나도 이게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진으로 찍고 인스타그램에 글과 함께 올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팀 한 팀 식당을 들른 사람들의 발자취와 그 사람들에 대한 글을 담담히 올린 SNS 게시물이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밀라노 기사식당은 파스타 전문점이다. 토마토 파스타인 포모도르파스타와 마늘 파스타인 알리올리오파스타, 그리고 버섯크림치즈파스타 등 통상의 파스타 전문점이 취급하는 파스타를 요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특이점’은 이들이 아니다. 한국의 대표음식인 전주비빔밥과 비슷한 ‘전주비빔파스타’, 초당순두부와 강된장을 활용한 ‘순두부강된장파스타’를 비롯해 ‘애호박불고기보나라’, ‘제육보나라’, ‘맑은 바질 불고기스튜’ 등 한국스러운 서양 요리가 그 주인공이다.


“왜 먹던 음식만 먹어야 할까요. 그렇다고 파인다이닝(고급식당)에 가자니 부담이 되고. 가볍지만 무겁지 않고, 익숙하지만 독특한 그런 음식을 하고 싶었어요.”
밀라노 기사식당이라는 이름과 식당의 내부 구조 등도 이와 비슷하다. 박 셰프는 “파스타이니까 이탈리아를, 그리고 아름다움과 패션이라고 하면 밀라노를 생각했다”며 “여기에 편암함의 상징인 기사식당을 접목했다”고 설명했다.
특이점을 가지고 있던 밀라노 기사식당은 2022년 5월 tvN <식스센스3>에 출연한 계기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하지만 밀라노 식당은 이미 같은 해 3∼4월쯤부터 이미 사람들이 오픈런(식당 등의 문을 열자마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행위)을 하는 곳이었다.
오전에 식당을 열기 위해 출근을 하던 중 사람들이 길게 서 있는 줄을 보고 “근처에 무슨 행사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던 박 셰프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식당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했다.

“지인이 도와준다고 해도 100여명 정도 받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손님들을 그냥 돌려보내야 했어요.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것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제가 너무 무리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좋지 않았죠. 음식과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녁 장사로만 제한했고, 지금은 저녁 예약으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식당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에도 박 셰프는 먹고사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어느 정도 지출할 것인지를 정해놓고, 그 지출 한도에 맞춰 돈을 벌면 된다”며 “그렇게 하면 좋은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고, 나 또한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셰프는 “식당은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또 가보고 싶은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별력이 없는 식당은 안 됩니다. 이미 맛과 품질이 좋은 밀키트와 레토르트(간편식품)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싶거나 소중한 사람을 데려가서 함께 음식을 먹고 싶은 식당이 돼야 합니다.”
박 셰프는 책을 쓰는 작가 요리사로도 유명하다. 2020년 밀라노 기사식당을 열고 2021년 12월까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첫 번째 책 ‘어서오세요, 밀라노 기사식당입니다’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를 이미 세상에 내놨다.

“첫 책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회가 온다는 에세이이며, 두 번째 책은 자기 개발서에 관련된 책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40여일간 독인연수 출장을 다니면서 느낀 감정 등을 담은 세 번째 에세이를 준비 중입니다. 독일 여행이 좋았고 맛있는 음식 등을 소개하는 책이 아닌 인문학적 인사이트(통찰력)을 담은 책입니다.”
현재 밀라노 기사식당이 위치한 곳은 도로를 기준으로 앞 쪽에는 재개발에 들어섰다. 밀라노 기사식당이 위치한 곳도 재개발이 될 예정이다.
박 셰프는 “재개발이 돼서 식당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며 “밀라노 기사식당을 운영하면서 강연이나 메뉴 및 브랜드 기획 등 다양한, 내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양한 길 중 하나이지만 길을 잃었을 때 나침판, 등대가 되는 사람이죠. 어차피 다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같이 살 수 있다면, 그게 앞선 길을 걸었던 선배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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