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가 8명… 절반 폐렴 질환
2024년 말 학대로 직원 20명 입건 속
입소자 건강·위생 부실 관리 ‘도마’
장애인 단체, 엄중 처벌·대책 촉구
복지부, 전국 109곳 현장조사 돌입
작년 말 울산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입소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직원들의 상습 폭행 등 학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장애인단체 사이에선 “인권 참사”라며 거주시설 학대 문제가 재점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당 A시설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16명의 장애인 사망자 중 20∼30대가 절반인 8명으로, 이들은 폐렴 등 질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 부실 관리 의혹도 제기됐다. 학대 관련 장애인 거주시설 대규모 전수조사를 시작한 정부가 건강∙위생 관리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울산시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0년 1월∼2025년 2월)간 A시설에서는 장애인 16명이 사망했는데, 모두 질병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20∼30대가 절반인 8명이며, 40대가 7명이다. 50대 이상은 1명뿐이다. 사망원인으로는 16명 중 5명이 폐렴이며, 20∼30대 중에선 4명이 폐렴으로 숨졌다. 이 외에도 위막성 장염, 영양결핍증, 심폐기능정지, 다발성장기부전증, 간암, 고나트륨혈증 등으로 사망했다.
이를 두고 장애단체에선 “의료지원 및 건강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입소 장애인들에 대한 건강 및 위생 관리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시설에 모인 만큼 폐렴 등 감염성 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영양 부족과 치료 지연 등으로 사망에 이른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은 “위생이나 의료체계가 발전하면서 폐렴 사망이 줄어든 추세에도 사망자가 속출한 건 거주시설에서 방임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이 시설 퇴소자 중에는 발목 골절 상태에서 방치돼 영구장해 판정을 받은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시설은 “환자가 발생하면 진료 및 치료 등 절차에 따라 한다”고 해명했다.

앞서 A시설에서는 지난해 10∼11월 20여명의 생활지도원이 중증 지적장애인 29명을 수차례 폭행하는 등 학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폭행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장애인도 있다. 입소자들에게 일부러 밥을 주지 않는 등 정서적 학대도 있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생활지도원 16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4명을 구속했다. 논란이 일자 A시설은 최근 “상처받은 모든 분들에게 깊이 사죄한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울산 지역에서 40년 가까이 운영 중인 A시설은 직원 80여명, 입소자 정원 185명으로 울산 최대 규모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다.
장애인단체들은 “학대 및 부실 관리 문제가 거주시설에 만연하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 요구에 나섰다.
전장연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을 필두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참사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지난달 출범해 학대 가해자 엄중 처벌, 시설운영법인 행정처분 및 특별감찰, 거주인 자립 생활 지원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이틀 앞둔 18일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 앞에서 A시설에서 사망한 장애인들을 애도하기 위한 ‘인권참사 희생자 추모제’를 진행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학대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거주시설 현장조사를 통해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50인 이상 거주시설 전국 109개소를 대상으로 4∼5월 현장조사를 벌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충남 천안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 방문해 “최근 울산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 등에 대해 국민과 장애인분들께 송구하다”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미화 의원은 “복지부의 전수조사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면밀한 학대 조사를 통한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건강, 위생 등 전방위적 조사까지 이뤄져 지원체계 전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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