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철거를 시작했다. 군은 어제 철거작업 사실을 공개하며 “군사대비 태세에 영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남북 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이번 조치가 북한과 사전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된 사안임을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은 이른바 ‘귀신소리’로 불리던 대남 방송을 멈췄다. 하지만 이후 약 두 달 동안 그 외에 북한 태도에 어떤 변화라도 있었던가.
이재명정부는 대북전단 살포 통제와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라디오·TV 방송 중단 등 잇단 대북 유화책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얼마 전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답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선의에 기댄 대북정책이 늘 실패를 거듭했던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
42여년간 옥살이 후 1990년대에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안학섭(95)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안씨는 최근 정부에 북한 송환 요구를 요구하는 공식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정부는 “현재로썬 안씨의 북송 여부를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나, 정 통일 장관이 취한 일련의 대북 유화 제스처를 고려할 때 안씨 북송 또한 조만간 결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통일부 관계자들이 지난달 23일 안씨 병실을 찾아 안씨 건강 상태와 송환 요구 배경 등을 파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김대중정부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해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북송했지만 안씨는 잔류했다. “미군이 나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대북확성기 철거와 장기수 송환 문제는 국가 안보와 대북정책의 원칙, 그리고 국민 여론까지 고려해야 하는 민감 사안이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 간 대화의 조건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약속과 합의를 자신들 입맛에 따라 멋대로 파기하거나 주물러왔다. 상호주의 원칙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북한의 선전도구로만 악용했다.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인도주의를 내세우기 전에 북한에 먼저 묻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생사 확인과 송환, 납북자 문제 해결, 군사 도발 중단에 대한 확약이 그것이다. 일방적 양보는 결코 평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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