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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족이 되어간다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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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1 22:51:21 수정 : 2025-09-11 22: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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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오래 ‘정상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규격화된 틀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이미 그 경계를 벗어나 있다. 비혼 동거, 1인 가구, 입양 혹은 돌봄을 매개로 맺어진 다양한 관계들이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제도와 사회는 여전히 ‘부모·자녀·이성애 부부’로 요약되는 전통적 모델을 정상이라 부른다. 바로 이 지점을 향해 tvN 드라마 ‘첫, 사랑을 위하여’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의 주인공 지안(염정아)은 효리(최윤지)의 생모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죽은 친구의 딸을 입양해 홀로 키우며 살아왔다. 반대로 지안의 친모는 욕망을 좇아 미성년 딸을 버리고 외국으로 떠난 뒤 결국 삶을 마감한다. 여기서 가족의 의미는 역전된다. 혈연을 맺고도 모성을 저버린 존재가 있는가 하면, 핏줄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끝내 곁을 지킨 사람이 있다. ‘첫, 사랑을 위하여’는 바로 이 대조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으로 성립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다.

 

지안과 효리의 곁에는 섬망을 앓는 이웃 할머니가 있다. 서로의 삶을 돌보며 지탱하는 이들의 관계는 사회가 ‘정상’이라 호명하는 어떤 혈연 가족보다 더 따뜻하고 진정성 있다. 함께 밥을 먹고, 병을 돌보고, 눈물을 나누는 장면들은 가족이란 제도적 규정이 아니라 일상적 돌봄과 책임의 실천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서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과 겹친다. 이미 비혼·한부모·성소수자·장애인 가족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들을 보호의 울타리 밖에 두고 있다. 민법은 가족을 혈연·혼인·입양으로만 정의하고 복지와 지원은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된다. 그 결과 많은 이가 불평등과 고립을 감내해야 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서로를 돌보며 발명해 낸 관계는, 바로 이 제도적 부재 속에서 등장한 대안적 가족의 형상을 닮았다.

 

‘첫, 사랑을 위하여’는 ‘첫사랑’을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다시 살아보게 하는 연대의 힘으로 그린다. 지안과 효리 그리고 이웃의 삶은 기적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도래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다. 피가 아닌 눈물과 웃음, 서로를 버티게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족의 다른 이름임을 드라마는 보여준다.

 

이 작품이 남기는 여운은 제도가 정의하지 못한 틈새에서 피어난 따뜻한 유대다. 정상가족이라는 낡은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누군가를 끝내 지켜내려는 마음이 곧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드라마는 조용히 속삭인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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