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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조선인 전시 '무관심'·추도식 '반쪽'…사도광산 세계유산 1년

입력 : 2025-09-14 14:19:48 수정 : 2025-09-14 14: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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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박물관 조선인 전시공간 30분간 관람객 전무…바로 옆 근대유산은 발길 이어져
"사도는 풍요의 섬" 긍정적 면 강조…추도식은 추도사 '강제성' 표현 이견에 韓불참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을 지난 12일 오후 4시께 찾아갔다.

평일인 데다 폐관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인지 관람객은 남녀 한 쌍 외에는 없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아가며 뒤쪽 건물로 이동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향토박물관. 이 박물관에는 조선인 노동자 생활을 설명한 작은 전시실이 있다. 연합뉴스

이 건물에는 일본이 작년 7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됐을 때 마련한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 전시실이 있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유산 시기를 전통 수공업으로 금을 채취했던 16∼19세기로 한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요구했고, 일본은 지난해 개최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조선인 노동자 생활을 다룬 전시실을 만들고 모든 노동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됐던 작년 7월 이후 약 1년 만에 다시 찾은 전시실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설명문을 부착한 패널이 튼튼한 소재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동일해 보였다.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가혹한 노동을 했다고 소개됐지만, 이들이 강제로 동원됐다는 문구는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내 조선인 노동자 생활 전시실. 연합뉴스

전시 내용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과 반응이 궁금해 아무도 없는 전시실에서 30분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누구도 오지 않았다.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바로 옆 '부유선광장'(浮遊選鑛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도광산을 상징하는 근대유산이자 대표 경관으로 꼽히는 곳이지만, 세계유산 구역에서는 제외됐다. 부유선광법은 광물을 골라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짙은 녹색 넝쿨로 뒤덮인 부유선광장에는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어림짐작해도 10명은 충분히 넘었다. 대부분 부유선광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니가타현에 거주한다는 20대 여성에게 근대 시설인 부유선광장은 세계유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넌지시 물었다.

이 여성은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아이카와향토박물관에 조선인 노동자 생활 관련 전시실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도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했다.

도쿄 인근 요코하마시에서 사도섬에 여행 왔다는 3인 가족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들에게서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부유선광장. 세계유산 구역에서는 제외됐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연합뉴스

애써 만든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다는 느낌과 함께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꼼수' 전략이 어느 정도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광산은 현대까지 운영됐고, 현재 관광객이 찾는 경관은 근대유산이 많다. 하지만 일본은 굳이 세계유산 시기를 16∼19세기로 정했고, 세계유산 등재 이후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예컨대 니가타시와 사도섬을 잇는 여객선 운항사인 '사도기선' 홈페이지는 '세계유산 등재 사도광산 추천 명소 5곳' 중 하나로 부유선광장을 포함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가치는 근대 이전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에 따라 부유선광장이 세계유산 구역에서 빠졌다는 설명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13일 사도광산 안내 시설인 '키라리움 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물은 금맥이 터진 사도가 '풍요의 섬'이었다는 밝은 역사만 강조했다.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힘든 노동을 했다는 문구는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한일 양국이 합의한 추도식도 작년보다는 관심이 줄어든 듯했다.

작년에는 한국이 막판까지 참가를 조율하다 행사 직전 보이콧을 결정했지만, 올해는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이 충분히 담기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추도식 약 열흘 전쯤 일본 측에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사도광산 전시관인 '키라리움 사도' 외관.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차관급인 정무관을 보냈으나, 올해는 그보다 격이 낮은 담당 국장을 참석시켰다. 니가타현도 작년과 달리 지사가 불참하고 부지사가 지사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추도식은 비교적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지만, 한국 유족이 불참해 여러모로 의미가 퇴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날은 일본에서 3일 연휴의 첫날이었고, 도쿄에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막해 추도식에 대한 주목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만난 NHK, 지역신문 기자는 연합뉴스 기자에 한국 측 추도식이 언제 열릴지를 물었다. 한국 정부는 올가을 별도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지만, 구체적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13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나카노 고 추도식 실행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도식에 불참해 2년 연속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관련 조치는 나가사키현 하시마(군함도) 탄광 등이 포함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과 비교하면 낫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전시관은 해당 유산 소재지가 아닌 도쿄에 설치됐고, 조선인을 포함한 노동자 추도식 관련 합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사도광산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견해차도 쉽사리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바꾸지 않는 한 사도광산 추도식은 계속 '반쪽'으로 진행될 듯싶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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