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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영 웰다잉 문화운동 대표 “삶의 마무리 자기 결정권 보장하는 ‘웰다잉 기본법’ 제정해야”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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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1 06:00:00 수정 : 2025-09-30 16:38:56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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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300만 돌파
보건소 기능·홍보 미흡 아직 갈 길 멀어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 완성

품위있는 죽음 ‘자기 결정권’ 제일 중요
김수환 추기경·법정 스님 ‘웰다잉’ 실천
내 삶 내 뜻대로 마무리 자연스러운 일

연명치료중단 말기 환자까지 확대 필요
장기 기증·장례 등 죽음 전 결정할 중대사
웰다잉기본법 홍보·교육 국가가 나서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국민이 지난 8월 10일 기준으로 300만명을 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거나,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를 이용하겠다거나 하는 의사를 스스로 작성하는 문서다.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의 출발점이다. 의향서 작성 300만 돌파는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7년 6개월 만이다. 국회의원 시절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주도했던 원혜영 ‘웰다잉 문화운동’ 대표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5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만난 원 대표는 “이제는 연명의료 문제를 포함해 장기 기증과 상속, 장례 등 웰다잉의 여러 분야에서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체계화한 ‘웰다잉 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원혜영 ‘웰다잉 문화운동’ 대표가 지난 25일 “죽음을 앞두고 결정해야 할 중대사인 연명의료와 장기 기증, 장례 등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웰다잉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300만 시대가 열렸다. 이 숫자에 만족하나.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1000만명 시대가 열렸다. 전 인구의 20%가 노인층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숫자가 많은 베이비 부머가 속속 노인층에 편입되고 있다. 의향서를 작성한 300만명은 현재 노인 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 사전연명의료중단 문제를 상담하고 등록해줘야 할 기관이 보건소인데 절반 가까이가 그 기능을 안 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홍보 노력도 부족하다.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조례를 만들고 지원해야 하는데 아직 미흡하다. 그런데도 300만명이 됐다는 건 대단한 성과이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얘기를 꺼리는 문화가 있다. 개인적으로 노모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얘기했을 때 마음이 불편했다.

“당사자인 어르신들이 연명치료 중단 문제에 제일 관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이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숨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발적으로 의향서를 작성한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이 대폭 늘었다. 삶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연명의료를 받을지 안 받을지,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 대안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을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의 완성이다. 죽음을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이상,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
 

―웰다잉 문화운동의 취지는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평균 수명이 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제는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할 때 연명치료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실존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놓지 않은 채 쓰러지면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끼우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투석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한다. 원하지 않는 힘든 치료를 받으며 소중한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면서 보낼 기회를 흘려보낸다.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경우 그 사람의 희망을 존중해줘야 한다. 삶을 품위 있고 존엄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자기 결정권이다. 당사자가 이런 문제를 숙고해서 나름의 방안을 미리 결정해 놓는 문화를 만들고, 사회는 그 결정권을 존중하도록 하자는 것이 웰다잉 문화의 핵심이다. 우리는 그런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이 삶을 마무리한 방식이 떠오른다.

“두 분 모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웰다잉을 몸소 실천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하자 인공호흡기 장착 등 일체의 연명의료를 거부했다. 장기를 기증해서 다른 생명을 살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장기 기증 서약이 무려 6배나 늘었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위독해지자 연명의료를 거부했다. 수의와 장례식을 거부한 본인의 뜻대로 스님의 장례는 아주 소박한 다비식으로 진행됐다. 이들의 품위 있는 죽음은 웰다잉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인공호흡은 거부할 수 있어도 인공 영양급식은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늙고 병들고 쇠약해져서 밥도 못 먹을 정도가 되면 그때는 밥을 억지로 먹이는 게 더 고통스럽고 평온한 죽음을 방해할 수도 있다. 최소한 건강한 사람이 곡기를 끊어서 생기는 그런 고통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과정이니까 그런 점에서 인공영양 공급 중단이 자연의 법칙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다수 유럽 국가 및 대만 등에서는 인공영양 및 수분 공급을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에 포함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당시에도 인공영양 급식도 연명의료중단 대상에 포함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신중론에 밀렸다.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스스로 곡기를 끊는 방식으로 임종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미국의 평화운동가인 스콧 니어링 박사는 100세가 됐을 때 단식을 하며 세상과 작별했다. 가을이면 나무가 영양공급을 줄이고 무성한 나뭇잎을 하나둘 떨어뜨리는 것처럼, 인간 생명의 흐름도 자연으로 돌아갈 때는 영양분을 서서히 줄여가고 종국엔 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니어링의 곡기 끊기는 자연 질서에 순응하면서 내 삶을 내 뜻대로 마무리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의외로 그런 사례가 많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 이건 법을 바꿀 필요도 없이 본인 결정만으로 가능한 선택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할 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연명치료중단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임종 과정인지 여부는 의사가 판단하지만, 언제부터가 임종기인지를 놓고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2023년 기준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중단한 비율은 12.7%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는 진단을 받은 ‘말기 환자’는 연명치료중단 대상이 아니라서 인공호흡기도 뗄 수 없다. 다른 나라들처럼 연명치료중단 대상을 말기 환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법적 효력이 충분히 보호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한데 현실은 다르다. 의향서를 작성했어도 당사자가 말도 못하는 상황이면 자녀들이 연명치료 중단에 반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법에는 원론적으로 본인의 뜻을 존중한다고 돼 있지만, 가족이 이렇게 강하게 요구하면 의료진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족끼리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본인의 결정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좀 더 강하게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당사자가 평소에 가족들과 충분히 소통해서 연명의료중단에 관한 자기 뜻을 이해시키고 그 뜻을 존중할 수 있도록 당부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19, 20대 국회에서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고 마지막까지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웰다잉 기본법 제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뿐만이 아니라 장기 기증이나 장례, 상속 모두 본인이 죽음을 앞두고 결정해야 할 중대사다. 웰다잉 문화 전체 중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문화가 화장(火葬) 문화다. 아름다운 화장 시설을 건설하고 자기도 화장을 선택한 SK그룹 최종현 선대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 웰다잉 문화의 핵심은 삶의 마무리에 관한 문제에서 당사자에게 자기 결정권을 인식시키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웰다잉기본법의 취지는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이를 실천하도록 홍보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국가에 맡기자는 것이다. 물론 연명의료중단이나 장례, 상속, 기증은 개별법이 규율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를 포괄해서 자기 결정권이라는 관점에서 웰다잉 결정 방식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웰다잉기본법 제정에 따른 재정 부담은 없나.

“국가의 모든 복지 사업은 연금을 주든 틀니를 해주든 모두 돈 먹는 기계다. 그런데 웰다잉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은 교육과 홍보 비용 말고는 돈 들어갈 일이 없다. 사망 직전 1년 동안 들어가는 연명치료 비용이 1인당 2000만원 정도다. 연간 30만명이 넘게 죽는데 10만명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안 받으면 연 단위로 의료비 2조원이 절약된다. 건강보험공단이 사전의료연명의향서 등록을 열심히 하는 이유다. 연명의료중단으로 가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도 아낄 수 있다. 장기 기증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니까 소중하고 합리적 장례 문화는 사회적, 개인적 경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웰다잉 기본법을 만들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된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무관심해서 안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웰다잉 문화 만드는 일을 국가 정책 과제로 다뤄주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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