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제인 구달 박사는 생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국내 시민단체가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償)을 받기도 했다.

구달 박사가 가장 최근에 한국을 찾은 것은 2023년이다. 당시 그는 6·25 전쟁 정전 70년을 맞아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생태·평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의 대표적 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 연구 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구달 박사와 함께했다.
당시 경기 파주시 장산 전망대에 오른 구달 박사는 “(전망대에서) 보이는 바로 저기가 북한”이라며 “한반도가 평화로운 상태로 회복하고 DMZ에서 북측 사람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국가가 다시 하나 되도록 힘을 더하는 것 역시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6·25 전쟁 정전 후 수십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DMZ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구달 박사는 “이곳 DMZ 근처로 걸어오면서 오래된 벙커가 수풀에 파묻힌 모습을 봤다”며 “다시 한 번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을 실감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구달 박사는 1991년 국제 풀뿌리 환경운동 단체인 ‘뿌리와 새싹’을 창설하고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회원들과 만나 생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해 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 석좌교수에 따르면 구달 박사는 최근까지도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의미있고 작은 일부터 하다 보면 결국 된다’는 뿌리와 새싹 운동의 신념을 한국인들에게 심어줬다.
방한 기간 구달 박사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와 만나 ‘인간과 동물, 자연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개 식용과 관련해 구달 박사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한다”면서도 “개와 동물을 학대하는 식용 문화의 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김씨는 “한국 사회가 개 식용 문화의 종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화답했다.
구달 박사는 83세이던 2017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관하는 제21회 만해대상 수상자(실천 부문)로 선정됐다. 선양회 측은 “유엔 평화대사로 인류사를 통틀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하나”라며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강연과 캠페인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1934년 영국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물학자이자 환경 운동가다. 20대 청년 시절인 1960년대에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 서쪽의 곰베 지역으로 가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뒤 평생을 동물행동 연구에 바쳤다.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여겨져 온 도구 제조와 사용을 야생 침팬지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구달 박사가 남긴 최대의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침팬지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별세와 관련해 제인 구달 연구소 측은 “고인은 미국에서의 강연 일정 때문에 캘리포니아에 있었다”며 “사인은 자연적 요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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