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과 척추혈관 손상이라는 하반신 장애를 딛고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척 클로스. 그는 10대 때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105년 후에도 살아남을 미술작가’로 아트뉴스에 선정되기도 한 척 클로스는 8가지 판화기법을 사용한다. 메조틴트, 펄프 페이퍼 멀티플, 스핏바이트 에칭, 리덕션 리놀륨, 실크 스크린, 스크리블 에칭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식 목판화 기법까지 풀어낸다. 일본 목판화 방식은 일본장인과 협업을 통해 이뤄져 기술과 예술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척 클로스의 이런 작업 태도는 자화상 등에서 인간의 얼굴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척 클로스는 회화와 판화 모두 그리드 시스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20대 때인 1960년대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중심 화두였다. 솔 르윗의 벽화처럼 특정 색상을 특정방식으로 사용한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게 됐다.”
그는 대단한 발상이 떠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구름이 갈라져 번개가 머리를 치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작업을 진행시키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판화로 제작된 척 클로스 자화상. |
그는 지난 40여년 동안 작업의 한계를 느껴 본 적이 없다. 작업실에서 한 가지 변수만 바꾸면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도 새로운 것을 구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판화작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일은 정말 즐겁다. 마치 사물을 한 가지 고정된 모습으로 보여주다가 순차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에게서 우리가 보고 경험해야 할 것은 도상학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타일은 과정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도상학과는 관련이 없다.”
한 예술가의 스타일은 어떤 과정으로 제작했느냐지 무엇을 제작했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경험이라는 음악을 편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내 경험을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척 클로스의 판화작품들은 100가지 색을 위해 100개의 판을 만들며, 때로는 한 작품을 위해 2년 이상 판화 공방의 장인들과 협업을 한다. 화가들의 부수적인 작업으로 행해지던 판화가 회화 이상의 완벽한 매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척 클로스는 직접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고 사진을 모델 삼아, 실제 인간의 크기보다 몇 배 더 크게 그려진 대형 사이즈의 인물화를 통해 ‘실제와 일루젼, 그리고 시각적 인식의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다각적 실험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인물화를 단순히 한 인간의 모습을 재현한 ‘초상화’ 대신 ‘머리들’(heads)이라고 호칭하며, 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 조립되어, 하나의 재현적 이미지로 합체하는 격자무늬의 추상화라 할 수 있다. 판화는 그것의 과정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시장에선 판화 완성작과 더불어 중간과정의 판화와 목판 일부도 볼 수 있다. (02)737-7650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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