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부들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예비 남편들과 만나기 위해 호놀룰루에서 헤어지기 직전 촬영한 기념사진. |
이 같은 민족주의·가부장적 인식은 과연 올바르며 바람직한 것일까. 남편을 따라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 여성은 우리의 사진신부와 무엇이 다르고, 고국의 가족 부양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베트남 여성은 앞으로 파독 간호사에 버금가는 지위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여성사전시관이 12월17일까지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진행하는 특별기획전 ‘여성과 이주―100년간의 낯선 여행(女行)’은 사진자료, 미술작품 등을 통해 지난 100년간 이 땅 이주여성의 경험과 기억을 더듬으며 그 의미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전시회다.
100년 전 배우자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태평양을 횡단했던 여성들은 가난과 관습에 찌든 고국과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외국 출신 이주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이번 기획전의 출발이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24일 열린 개막 강연에서 “여성 100년 이동사(史)는 물리적 환경과 정신적 배경은 달랐지만 늘 역사를 만든다고 가정된 남성주체를 위해 ‘집’이 돼야 했던 여성들이 그 낡은 이데올로기와 ‘집’인 자기 자신을 허물고 스스로를 재료 삼아 새로운 집과 자신, 그리고 의미를 세우는 과정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여성들의 움직임과 경계·국경 넘기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읽고 쓰고 외웠던 (가부장적 시각의) 기존 역사에 여성 관련 부분을 몇 장 끼워 넣는 식이 아니라 새로 다시 쓰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전은 서독 간호사, 재일·재중 조선 여성의 구술사와 함께 ‘사진으로 보는 100년간의 여성 이주’ ‘사진신부 신여성 위안부 미군아내 파독간호사 등 그녀들의 초상’과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女行한다’라는 제목의 7인 작가전 등으로 구성됐다.
유화 ‘떠나는 날에’ 등을 전시한 이정민씨는 “떠나든 떠나오든, 이는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없으므로, 혹은 더 잘살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다”면서 “삶에서의 이주는 본질적으로 강제적이나 그 강제에는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꿈의 설렘이 함께한다”고 말했다. 여성사전시관의 박은수 실장은 “이주가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는 요즘, 지난 100년 동안 드러나지 않던 이주여성들의 경험과 기억을 더듬으며 여전히 지속되는 여성들의 이주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마련했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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