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탄생' 외면·찬양 양극단 넘어 화해 시도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박정희, 한국의 탄생/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
박정희란 쉬쉬해야 하는 이름이고, 그를 언급하는 이는 눈치 없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1960∼70년대 내내 반박정희 정서를 주도했던 지식인들이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둘러싼 대중과 지식인들의 이런 인식적 괴리야말로 오늘날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 혹은 무관심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은 독보적인 박정희 연구가인 저자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800쪽이 넘게 가감 없이 펼쳤다. 희비가 엇갈리는 비공개 에피소드도 다수 삽입해 읽는 재미도 있다. 이를테면 육영수 여사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를 만난 적이 없었던 주례(당시 대구시장)가 착각하여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라고 하는 바람에 결혼식장은 일거에 웃음바다가 됐다는 내용과 서슬 퍼렇던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시절 광주에서 열린 혁명지지대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혼자 양말을 빨아 줄에 널던 모습을 부관에 들켜 멋쩍어하는 장면 등이다.
1962년 12월엔 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가 거친 풍랑으로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래서 국가원수가 한 번도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야” 하고 농담을 던지며 태연자약했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의 배포까지 읽힌다.
‘한 송이 흰 목련이 바람에 지듯이/ 상가(喪家)에는 무거운 침묵 속에/ 씨롱 씨롱 씨롱/ 매미 소리만이/ 가신님을 그리워하는 듯/ (중략) /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斷腸(단장)의 이 슬픔을 어디다 호소하리.’ 육영수 여사 국민장 다음날 썼다는 이 시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는 평범한 한 사내로서의 고독이 뚝뚝 묻어난다.
◇나이를 줄여 입학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
저자는 이어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박정희는 항상 청빈한 마음가짐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특권계층, 파벌적 계보, 군림사회를 증오한 그가 직접 집필한 ‘혁명과 나’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이던 1938년쯤 학생들과 함께. |
‘박정희, 한국의 탄생’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탄생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아예 박정희시대라고 주장한다.
“6070시대는 우리 현대사의 청년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뼈대와 얼굴 그리고 체질이 이때 형성됐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그때만큼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연출했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6070시대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근간이 거의 모두 완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부문의 진보는 경이로운데, 영국이 131년, 일본이 72년이 걸렸던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이루어냈던 것이다. 특히 70년대 유신 이후 계획된 조선업, 반도체, 원자력 발전과 같은 중화학 공업은,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경제강국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장으로 치른 박정희 영결식 장면. |
진보학자들이 박정희시대에 대해 만든 통념에 도전하고 싶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저자는 “박정희에게 흠 없는 성인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열린 마음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386 출신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6070년대 평가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자나라,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꼭 한국처럼만 하라! 뒷마당에 심어진 뽕나무나 올리브나무만 기르거나 봉제품을 만지작거리지 말고, 초일류에 도전하는 ‘미친 짓’을 벌여야 하며, 이때 반드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를 바로 세워 그의 가치를 되찾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 또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저자의 호소가 귓가에 맴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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