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위해 개인적 야망까지도 버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그들의 저작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
공산주의 이론을 완성한 마르크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사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지 20여년 만에 이들의 명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를 초래한 무시무시한 존재에서, 최근에는 현대 자본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한 이론가로 변신 중이다. 이미 1998년 ‘공산당 선언’ 출간 15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는 ‘마르크스의 주가가 150년 만에 다시 치솟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공산당 선언은 지칠 줄 모르고 부를 창조하는 자본주의의 힘을 먼저 인식했고, 자본주의가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여러 나라의 경제와 문화가 세계화라고 하는 불가피한 과정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평했다.
![]() |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이광일 옮김/글항아리/3만2000원 |
영국의 대표적 소장 역사학자인 트리스트럼 헌트(퀸 메리칼리지대 역사학부 교수)는 ‘엥겔스 평전’을 통해 “지금도 이런 분석은 유효하며 재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의 예언대로 서방의 정부와 기업, 은행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라는 태풍을 만났다. 멕시코와 아시아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중국과 인도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었으며,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중산층이 대거 몰락했고, 대량 이주가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2007∼09년 전 세계는 자본주의 위기를 겪으며 마르크스의 ‘불길한 예언’은 가시화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2008년 가을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은행 국유화가 진행됐다. 그 와중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자본론’(2008년 독일에서는 베스트셀러)을 읽고 있는 사진이 일간지에 나오자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그(마르크스)가 돌아왔다”고 외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마르크스를 가리켜 “놀라운 분석력을 가진 존재”라고 극찬했다.
지난 80년간 지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땅에서 유혈과 파괴를 초래한 마르크스가, 오히려 파괴적인 자본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인 외경심, 기사도의 열정, 속물적인 감상주의도 몽땅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얼음물 속에 처박았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각국의 언어와 전통 국가체제마저 변질시키는 과정을 밝혀낸 최초의 인물은 마르크스였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미국화(Americanization)의 대명사가 되기 훨씬 이전에 벌써 마르크스는 세계화의 모순을 짚고 있었다는 얘기다.
![]() |
◇엥겔스(뒷줄 왼쪽)가 1864년 마르크스(〃 오른쪽), 마르크스의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딸들로부터 ‘둘째 아빠’라고 불릴 정도였으며 그들을 40여년간 보살폈다. |
![]() |
◇극심한 빈부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진으로, 영국 빅토리아시대(1837∼1901) 면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소년의 모습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이 사진을 보고 분개했다. 글항아리 제공 |
![](http://img.segye.com/content/image/2010/11/19/20101119001386_0.jpg)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저트는 “본래의 공산주의가 변질됐으며, 레닌주의라는 독소로 인해 일탈했다”고 규정했다. 저자는 ‘못된 공산주의’가 물러간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그들의 저작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라고 제안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대기업과 거대 은행, 거대 자본가 등에 부가 집중하고, 빈부차가 극심해지며 서민과 노동자가 불행해지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으로 빠져드는 지금, 이 책은 신자유주의 종말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우주와 인간과 역사를 근본부터 잘못 인식해 허물어진 마르크스의 광풍이 다시 휘몰아친다면 역사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유명 사상가의 단순한 평전이 아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