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장에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 원명원(圓明園)에서 약탈된 동상 2점이 출품돼 중국과 프랑스 정부가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에서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이 경매에 나와 인도 국민이 들끓었다. 프랑스가 소장 중인 외규장각 의궤(풍속·의식절차 등을 기록한 책) 반환 문제는 우리나라와 프랑스 간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 환수를 둘러싼 문화재 피탈국들의 노력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대영박물관 ‘엘진 마블’ 환수 거부 19세기 초 영국의 엘진 백작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불법 반출한 대리석 조각상이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들은 이제 ‘엘진 마블(Elgin marbles)’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그리스 정부는 영국에 파르테논 조각들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대영박물관은 이를 거부했다.
박물관 측은 “엘진 마블을 아테네에 그대로 두었다면 지금쯤 대부분 파손됐을 것”이라며 “어차피 원상복구는 어려우니 많은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대영박물관에 그대로 두자”고 밝혔다.
엘진 가문의 백작 작위명 ‘엘진’은 이제 문화재 약탈자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엘지니즘(elginism)’은 문화재 약탈을 뜻하고,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합리화하는 행위를 ‘엘진의 변명’이라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원명원 청동상도 엘진 가문과 관련이 있다. 제2차 아편전쟁 때 청나라 원명원을 파괴하고 문화재를 대거 약탈한 영국과 프랑스 군의 작전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엘진 백작의 아들 제임스 브루스 엘진 백작이었다. 엘진 부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문화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셈이다.
경매 후 인도 반환 미국에서 경매에 부쳐진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 인도 사업가가 낙찰받아 인도 정부에 기증키로 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집트는 3400년 전에 제작된 네페르티티 흉상을 놓고 독일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멘호뎁 4세 부인 네페르티티는 ‘소년왕’ 투탕카멘의 어머니로 추정돼 문화·인류학적 가치가 높다. 이집트는 이 흉상을 소장한 베를린박물관에 환수를 요구했지만, 독일 정부는 “옮기다간 자칫 흉상이 손상될 수 있다”며 거부하고 있다. 이집트는 또 고대 상형문자 해석에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로제타석을 보관 중인 영국에도 반환을 청구했다.
페루는 미국의 사립 명문 예일대학교가 잉카제국 유물 수천개를 마추픽추에서 약탈해 갔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캄보디아 정부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 등에 떠도는 앙코르와트 사원 유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외규장각 의궤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반환을 위해 민관 합동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탈 문화재의 반환은 지지부진하다. 문화재 피탈국은 현 소유국을 상대로 대여라도 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이마저 거절당하고 있다. 일부 약탈 문화재 보유 국가는 “돌려받으려는 문화재와 등가의 유물을 영구임대 또는 교환을 해주면 환수할 수 있다”며 사실상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거는 경우도 있다.
中·佛 경매 신경전 프랑스 파리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출품돼 논란을 빚은 중국 청나라 원명원의 쥐머리·토끼머리 동상.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문제는 이들 협약이 강제력을 가진 국제법이 아니어서 반환 요구는 대부분 묵살된다는 데 있다. 문화재 반환 분쟁에서 가장 많이 원용되는 규정은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그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으로, 1970년 이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재 약탈은 그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문화재 반환 분쟁 해결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라치오 지방행정재판소의 판결은 문화재 반환 국제분쟁에 의미 있는 판례를 남겼다.
이 재판소는 2007년 판결을 통해 ‘문화재를 원맥락으로부터 이탈시키지 않는 정책’이 이탈리아의 정통적 정책이라며 자국이 식민지배 시기에 약탈한 리비아 문화재를 본국에 돌려주기로 했다. 이는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벌어질 비슷한 소송의 법원(法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獨정부 환수 거부 독일 베를린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흉상. 세계일보 자료사진 |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정부는 2005년 ‘문화재 보호계획’을 발표하고 각국에 불법 유출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재 환수는 매집을 통해 주로 이뤄진다. 중국 정부는 ‘해외문물환수전용기금’으로 정부재단과 국영기업, 국립박물관 등을 통해 문화재를 사들이고 있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의 경우 출품된 중국 고미술품의 25%가 중국으로 넘어갈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금까지 5만여점을 되찾았다고 인민일보(人民日報)가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 문화재의 불법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조사대까지 꾸렸다. 이들 수사대는 10여년간 노력을 기울인 끝에 미 로스앤젤레스의 폴 게티 박물관 고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자국 문화재 ‘호머 자기’를 불법 취득한 것을 밝혀내고, 이를 구매해 보관 중이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부터 돌려받았다. 이탈리아는 게티 박물관으로부터 40여점, 클리블랜드 미술관으로부터 14점의 유물을 환수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집트도 유출 문화재 되찾기 총력전에 들어갔다. 이집트 문화재최고위원회(SCA) 자히 하와스 사무총장은 “불법·부당하게 해외로 유출된 중요 문물을 되찾기 위해 국가적 캠페인을 조직할 것”이라며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나라에도 공동 전선을 제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움직임과 관련, “문화재 피탈국들의 적극 회수 움직임으로 서구 유명 전시·박물관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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