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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이 시대의 풍류] 감성덩어리 조각가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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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1-12 19:54:48 수정 : 2008-11-12 19: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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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고 볶고 뒤엉킨… 사람 사는 이야기를 조각하다
◇우리네 삶의 모습을 풍자적 리얼리즘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김경민 작가. 삶에 대한 그의 따뜻한 조탁은 찌든 영혼마저 정화시켜 주는 듯하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인형 같은 자그마한 소품들이 남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이 각자 자기일에 열중이다. 독서 하는 여자, 전화하는 아줌마 등 우리네 삶의 단면들이란 걸 쉽게 포착할 수 있다. 남들 앞에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도 유쾌하고 코믹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때론 거침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볼수록 날카로운 날이 가벼움 속에 숨겨 있다. 인간들이 품고 살아가야 하는 고충의 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 시대의 해학과 풍자라고나 할까. 작업실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작품들에 웃고 빠져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경기 일산 외곽에 위치한 조각가 김경민(38)의 작업실 풍경이다.

사람들은 그를 상큼, 발랄, 톡톡 튀는‘감성덩어리’라고 주저 없이 부른다. 새로운 감성의 자극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자세가 그렇게 만들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조각가의 오늘은 키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동네 미술학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화책을 읽어주며 그림을 그리게 한 가르침이 감성의 텃밭을 풍요롭게 했다. 요즘도 예술가의 길에 막막함이 느껴지면 그때를 떠올려 본다. 작업이 행복해지고 가슴이 따듯해지기 때문이다. 
◇‘달 따러 갑니다’

대학원 시절 남편인 조각가 권치규를 만났다. 같은 조각가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언제나 힘이 됐다. 따로 데이트하거나 시간을 내서 차를 마실 필요 없이 모든 것이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참 편한 관계였다. 그런 우린 어느 새 결혼 10년차가 됐다. 이젠 둘은 함께 작업실을 쓰는 동료 작가이기도 하다.
◇‘돼지 가족’

세 아이도 태어났다. 일하는 여성에게 여러 명의 아이는 참으로 버겁다. 세상을 겸손하게 볼 수 있는 마음을 주려고 세 아이를 주셨나 생각해 본다. 실제로 자꾸만 세상을 만만하게 보려는 버릇을 경계하게 해준다. 작업을 끝내고 밤마다 아이들과 함께 누워 동화책을 읽는다. 그 속에서 작품이 떠오른다. 작품이 가족 속에서 걸어나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작품은 나의 이야기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나에게 행복은 세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뒤엉켜 사는 삶이다. 그걸로 행복을 조각한다. 또다른 갈망은 나에게 욕심이다. 지금 나에겐 ‘충분한 행복’이다.

작품 ‘돼지 가족’은 엄마의 등에 아빠 등 네 가족이 업혀 있다. 집안일을 모두 엄마만의 일로 넘기는 가족들의 야속함을 담았다. 집 안에만 들어서면 가족들은 모두 돼지처럼 게으름을 피우면서 엄마만 불러댄다. TV 리모컨만 들고 앉아 있는 남편, 엄마 밥 줘, 엄마 옷 줘 등 ‘엄마! 엄마!’ 풍경은 작품으로 태어났다.

때론 작업실 인근 신작로를 걸어 본다. 엄마는 엄마뿐인 줄 알았는데 나도 한때는 소녀였고 젊음을 만끽하던 아가씨 시절이 있었구나 하며 ‘시간의 강가’를 서성거려 본다. 풀냄새가 나는 오솔길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이 시대의 신세대다.

사회적 상황에도 가끔씩 눈길을 돌린다. 삶의 환경 차원에서다. 작품 ‘Yes Man’은 정치적 상황을 풍자한 내용이다. 권력자 앞에서 무조건 ‘Yes’만 말할 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작품의 주제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 사는 얘기’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낙천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 풍부한 상상력의 나래가 돼준다. 인물들의 표정에서 그것들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읽어주는 책속에서도, 서점의 잡지에서도, 신문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영감을 얻기 위해 나의 뇌가 호흡 하는것 같다. 이 시대의 감성을 주워 올리는 것이다.

조각가는 사물을 평면과 단면보다 입체화해보는 버릇이 있다. 그만큼 마음이 열려 있어 만나면 편해지는 것이 조각가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작가이기 전에 자랑스러운 어머니가 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작업이 되고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삶과 작품을 하나다.
◇‘굿모닝’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것이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은 이제 신념이 됐다. 대학원 시절 친구의 자취방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푹푹 찌는 8월 여름밤으로 기억한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친구의 방은 ‘악몽’이었다. 밤새 잠에 들지 못하다가 아주 작은 미니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에 발을 넣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내가 미니 냉장고 보다 더 작아져 그 속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는 꿈을 꾸었다. 바로 다음날 만든작품이 ‘한여름밤의 꿈’이다. 이런 일상의 이야기가 작품으로 이어진다.

나는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습관이 있다. 걸어가면서 한손은 휴대전화를 받으며 귀에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손에는 먹을거리 들고 다니며 가방에는 정리되지 않는 잡동사니투성이다. 작품 ‘나의 애장품’은 이런 나의 습관을 담은 작품으로 내가 봐도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작품 ‘I like shopping’은 쇼핑 하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이다. 소유 욕구를 만족시키는 작은 일상을 포착했다. 나는 요즘 ‘I don’t like shopping’이다. 가지는 것이 부담스럽고 버겁다는 생각이다

작품 ‘달 따러 갑니다’는 아빠가 긴 사다리를 들고 달을 따러 가는 풍경이다. “아빠 달 따줘.” “아빠는 널 위해 달도 별도 다 따주마.”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무조건적 아빠의 사랑이 참 이쁘다.

작품 ‘낯선 천국’에선 남자는 걸레질을 하고 부인은 남자의 엉덩이에 앉아 독서 중이다. “내가 이 집 가정부야, 식모야? 결혼은 여자에게 아주 전속 식모계약서네? 아∼ 억울하다. 난 너의 비서도 종 노릇 하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내 희생만이 이 가족의 행복이야?”라는 나의 푸념들이 발단이 됐다. 다투고 괴로워한 우리네 여성의 속내다. 여자도 남자의 헌신 아래 행복을 누리는 삶이 당연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만든 작품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여자와 남자를 떠나 인간의 사랑과 희생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좀더 세상을 안고 싶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도 반어적 화법으로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아 반갑다.

나는 컬러가 좋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난 채색이 없는 조각이 답답했다. 컬러를 매치하는 일이 재밌다. 조각작품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원색이 좋다. 간단 명료 심플해서다.

어느 날 친구랑 지하철 환기구를 지나가다 친구의 공주 치마’가 뒤집어진 적이있다. 얼마나 우습던지. 그날밤 스케치로 그 장면을 그려 작품으로 깎았다. 상기된 친구의 얼굴이 어찌나 웃기던지.

나른한 오후 대학로 KFC 앞 버스 정류장에 가면 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리 세상이 빨라도 나만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름한 오후가 거기에 있다. 대학로 한가운데 벤치에 벌렁 드러누워 뒹굴며 고민하고 낮잠자며 즐기는 ‘나만의 시간’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길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장면이 흔해졌다. 참 좋다. 포장하지 않은 자신의 표현이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솔직한 표현은 아름답고, 그런 세상이 고맙다. 나의 스케치 목록에 키스가 추가됐다. 숨어서 이루어지는 이중성은 정말 싫다.

형태와 내용이 재미있으면 모든 것을 스크랩한다. 그것이 신문이든 잡지든 사람들의 일상들을 모두 스크랩한다. 메모로, 그림으로 저장도 한다. 20대까지 정말로 많이 돌아다녔다.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날씨가 너무 맑아서 등 이유도 가지가지다. 수업 빼먹기를 밥먹듯이 한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젠 내 감성의 호수로 남았다.

조각에서 ‘무거움의 허위’를 걷어내고 있는 김경민 작가는 리얼리즘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부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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